칼잡이들의 이야기 보르헤스 전집 4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외 옮김 / 민음사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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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상상력은 언제나 현실과 접목되어 있다. 그 접목은 역사적 관계이다. 케네디를 추모하며라는 단편에 보이는 한 발의 총알의 역사는 아주 짧은 분량임에도 창세기의 카인에서부터 현재에 이르는 인류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 단편을 읽어보고 뒤에서부터 다시 읽어나갔을 때 명료하게 드러나는 살인의 이야기는 카인이 아벨을 죽인 돌멩이에서부터 시작됨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살인의 행위는 돌멩이에서 소크라테스의 독배로 예수를 찌른 창촉으로 총알로 바뀌어 가지만 그 행위는 계속 반복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즉 이런 보르헤스의 관점은 역사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 온다는 일반적인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기에 역사의 연속성이란 과정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보르헤스의 단절된 역사관은 매우 혼란스럽게 보인다. 그럼에도 그의 역사관은 아주 익숙하게 보여진다. 왜냐하면 윤회관과 유사한 방식이기 때문일까. 다시 케네디를 추모하는 단편으로 돌아가서 윤회관을 반영해 본다면 더 그럴듯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전생에 카인이 던진 돌멩이였고, 예수를 찌를 창촉이었으며, 여왕을 죽인 세모꼴 칼이었고...결국은 케네디를 죽인 총알로 태어나 여기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의 세계는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대화속의 대화로 들어가면 다시 보르헤스의 미로속에서 방황한다. 작자와 마세도니오스가 영혼은 불멸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토론한다. 이때 저자는 이 대화를 지속하기 위해 자살하자고 제안하는데 이 얼마나 멋있는 이야기인가. 영혼이 불멸이라면 죽음자체도 불멸이고 그들의 대화는 끊임없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영원의 불멸성에 참여하지 못한 늙은 작가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기억이라는 또 다른 영원속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천국XXXI,108에서는 케네디를 죽인 총탄과 유사한 세계가 제시된다. 다만 여기서는 신의 모습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천국은 금고의 비밀번호처럼 하나의 암호문으로 대치되어 있다. 이것은 기억이라는 것과 연관되는데 기억속에서 천국의 번호를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보르헤스의 작품을 읽으면 비트겐슈타인이 한 말이 생각난다. <아마 이 책은, 자기 스스로 이 책 속에 표현된 생각이나 적어도 그와 유사한 생각을 이미 했던 사람들에 의해서만 이해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도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보르헤스의 환상과 상상력이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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