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쟝 바티스트 그르누이Jean-Baptiste Grenouille란 이름은 소설의 주인공으로 아주 제격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그르누이의 사전적 정의는 개구리frog를 뜻하는데 이 동물은 가끔 프랑스인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그 한 예로 아트 슈피겔만의 <쥐>에 보면 프랑스인을 개구리로 묘사하고 있다. 프랑스인 쥘 르나르는 <자연의 이야기>라는 책에서 개구리를 가만히 있을 때는 고요한 늪의 종기같고, 떠들때는 시끄러운 신문팔이처럼 뉴스를 소리쳐 알리는 동물이라고 묘사했다. 그리고 벌레를 잡아먹으며 오직 사랑할 궁리만하는 짐승이며 낚시꾼을 괴롭히는 동물이라고 하였다. 자신의 동족인 프랑스인이 성향을 정확히 묘사한 것이라 하겠다.

그의 이름 쟝 바티스트는 성서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보통 <세례자 요한>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유대인들이 메시아로 알고 있었지만 자신은 극구 이를 부인한 인물이다. 그는 오직 자신의 뒤에 올 사람의 앞길을 준비하는 인물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살로메의 유혹에 넘어간 헤로데의 명에 의해 참수되는 운명의  인물이다.  그러므로 이 두 이름을 무리하게 접합하면 메시아인것처럼 오해된 프랑스인 정도가 아닐까.

그르누이는 프랑스의 루이 15세 시절의 인물이다. 루이 15세(1715-1774)는 1726년부터 통치를 시작하였다. 앙드레 모로아는 <프랑스사>에서 그를 <연약하고 침울하며 비정하고 잔인했으며 소녀처럼 생긴 미남이었다. 성품이 비겁하고 게으르며 때로는 잔인한 만행을 저지르는 품이 꼭 루이 13세와 흡사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즉 신민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던 왕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1747년 다미앙이란 시종이 국왕에게 단도를 휘두르며 암살을 시도했을 때도 국왕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시대적 상황이 그르누이가 활약하던 시절이었다.  

그르누이는 후각이 아주 예민한 인물로 묘사된다.  인간의 오감 가운데 후각은 가장 빨리 피로를 느끼는 기관이다.  이런 사실은 이솝의 우화에 무두장이 이야기로 이미 고대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러므로 후각은 어쩌면 천재성을 상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천재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기에 순간적으로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다. 하지만 그 흔적은 워낙 깊어 사람들은 그 깊이와 넓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깊이와 넓이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의미에서 그르누이의 후각은 동물적 천재성인 감각을 말하는 것이리라.  이는 당시 프랑스 사회가 이성의 물결 속으로 급속히 빨려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어쩌면 그르누이는 원시적 생명력을 가진 마지막 천재이자 예언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이 예수를 만나야 하듯 그의 원시적 생명력인 후각은 지세프 발디니와의 만남에서 서 극대화된다. 감각적 천재성과  이성의 만남은 발디니가 끊임없이 얻으려 노력하는 공식에 집약되어 있다. 즉 앞으로의 세계는 감각적 천재가 차지할 공간은 없는 것이다. 앞으로의 세계는 계획되고 설계되는 공식의 세계인 것이다. 그르누이처럼 직감에 의존하는 천재의 시대-혹은 푸코가 말했던 광기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르누이는 한 곳에 머물수가 없다. 머문다는 것은 곧 소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르누이는 예수처럼 곳곳을 전전하며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전파한다. 그의 방식은 철저히 세례자 요한의 방식이다. 자신의 공을 뒤에 오는 사람에게 양보하는... 그럼에도 그르누이의 비극은 이미 예견되어 있다. 그는 메시아가 아니라 오직 그 메시아가 오는 길을 먼저 알려주는 전령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의 이름에서 이미 드러나 있는 셈이다. 그는 천재적 감각의 세계가 끝나고 합리적 질서의 시대가 열리는 것을 알려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최후를 위해 살로메 혹은 헤로데를 선택하는 일만이 남았다.  그것을 위해 그는 금단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순간 그의 천재성은 광기로 전이되어 버린다. 이제 천재성은 사라지고 광기만이 남을 때 거기에 존재하는 것은 프랑켄슈타인 뿐이다. 그리고 그는 왕을 꿈꾼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불가능하다. 이름이 운명을 결정한다면...

사실 그르누이의 후각은 어쩌면 당시 프랑스 사회를 암암리에 둘러싸고 있던 불온한 사상-지배자의 입장에서 볼 때-이 아닐까. 이 사상은 기존의 모든 질서를 서서히 질식시켜 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르누이가 살인을 저지를 때 교살을 택하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교살을 통해 서서히 질식되어 가는 화석화된 프랑스 왕국도...  그르누이가 뿌려놓은 향의 냄새는 오래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인간의 뇌 속에 기억된 냄새는 일생을 간다.  그 원시적 감각의 냄새는 지금도 우리들의 뇌 속에 저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것이 향수에 취해 상상을 하는 내가 본 그르누이의 세계이다.

+ R. I. P. 쟝 바티스트 그르누이Jean-Baptiste Grenouille 1738년 7월 17일- 1767년 6월 25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