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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역사
연민수 엮음 / 보고사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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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3국의 역사적 전개를 살펴보면 서로 유사한듯 하면서도 상이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흔히 한.중.일이란 집합적 단어로 세 나라의 이질성보다는 동질성에 더 많은 무게를 싣는다. 하지만 각 국의 역사를 읽어보면 그 전개과정 속에서 역사적 동질성보다는 이질성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우리들은 인종적, 언어적 측면에서 중국과 일본 가운데 어느쪽이 우리와 유사한가를 묻는다면 일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한일의 관계는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만큼이나 상이하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일본이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일본의 역사가 우리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는 막연한 감정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감정적 견해는 중국과 우리의 관계를 보면 무색해진다. 사실 우리의 역사는 시작부터 일본보다는 중국과 더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이 밀접함은 도가 지나쳐 우리의 선조들은 우리의 땅을 <小中華>로 부를 정도였다.
일본 역시 역사의 형성기에 대륙으로부터 많은 문명을 전해받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중국에서 한반도를 거쳐 전해지는 도식적인 설명을 일본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그들은 경우하는 문화를 선택하기 보다는 중국으로부터 혹은 남쪽의 해양문화로부터 직접 문명을 전수받았다는 어려운 길을 택한다. 이는 일본의 역사적 성격을 규명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일본은 자신들의 모습을 해양문명과 연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일본적 문화의 특질은 한국과 중국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대륙적 문명과는 아주 판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즉 일본은 자신들 스스로 한국과 중국이라는 탯줄 대신 남쪽의 해양문명의 밧줄을 부여 잡았던 것이다. 이런 일본의 성격은 신화에서부터 아주 판이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의 종교관이라든가 윤리관 역시 대륙적 기질과는 거리가 있다. 이들의 윤리관은 아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은 강력한 무가문화로 제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무가적 특성은 한국과 중국에서는 그리 활발한 것은 아니었다. 굳이 이와 유사한 것을 들자면 중국에서는 협객의 문화가 있고, 한국에서는 이에 상응하는 어떤 개념도 찾아볼 수 없다. 중국 역시 이 협객의 문화는 주류가 아니라 주변부의 문화였다. 하지만 일본만은 무가의 문화가 주류로서 지속적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특징만 보더라도 일본의 문화는 한국과 중국의 문화와는 아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하겠다.
일본의 무가문화는 루스 베테딕트 여사가 저술한 <국화와 칼>이라는 저서에서 아주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다만 베네딕트 여사가 다룬 것은 인류학적 측면에서 접근한 일본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무가문화의 성숙을 위해서 특이한 과정을 밟았다는 점이다. 일본은 무가문화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유학을 선택하기 보다는 불교의 선종계통을 수용하였다는 점이다. 선과 다도와같은 내면의 성숙을 위한 외적인 형식에 치중하는 무가문화는 일본 문화의 한 특질이 되어 버렸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이 통일국가를 이루면서 선종적인 이념으로는 국가를 다스릴 수 없음을 깨닫고 그때서야 조선을 통해 퇴계학을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이 퇴계학을 기반으로 중국에서 받아들인 양명학과 조화를 통해 일본적인 국학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상한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