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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역사가 사마천 ㅣ 넥스트 15
버튼 윗슨 / 한길사 / 1995년 11월
평점 :
품절
서양인들이 헤로도투스를 역사의 아버지라고 부르듯 중국인들 역시 사마천을 역사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하지만 중국은 1949년 이후 공산화가 되면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재평가를 실시함으로서 많은 인물들이 우파적 부르조아적 성향을 지녔다는 판정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사마천은 사회주의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도 그의 진보적인 역사관과 현실주의적 역사인식을 높이 평가 받았다. 이후 중국의 사학계는 사마천의 저서를 유물사관에 입각하여 철저하게 연구 규명함으로서 이 역사가의 또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두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부분은 사마천에 관한 논문을 모은 논총과 같은 성격을 지닌 부분으로 중국의 학자들이 평가하는 사마천에 대해서 기술되어 있고, 뒷부분은 와츤이 기록한 사기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다. 그래서 중국의 사학자들과 미국의 사학자들이 보는 사마천의 모습을 극명하게 비교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서구 사마천 연구의 태두라 할 수 있는 샤반의 논문 일부가 이 책에 개재되어 있다는 사실 역시 책을 읽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물론 완역되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와츤의 저서 역시 1958년에 기술된 것이기에 시간적으로는 약 반세기의 시차가 있지만 그 내용은 지금의 관점에서 봐도 조금도 낡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만큼 사마천의 사기에 대한 완벽한 가이드라 할 수 있다. 사마천은 그의 인생 역정을 살펴볼 때 결코 정권의 주류에 속했던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 사실은 그가 사형판결을 받았을 때 돈으로 속량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음에도 이를 구하지 못해 궁형을 받았다는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바로 사마천의 이런 점이 사회주의 역사학자들에게 어필하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글 곳곳에서 당시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은 사기가 역사서 이전에 당시의 삶을 간접적으로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유물사관에 입각한 사회주의 역사가들은 사마천의 사기 가운데 혹리열전과 유협열전을 상당히 중요시했다. 혹리 열전은 말 그대로 가혹한 관리에 대한 이야기이고 유협 열전은 요즘 책으로 나온 중국의 유맹들에 관한 이야기 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물사관이 사회적 현상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와츤의 경우 이런 사상성에서 자유로운 입장에 있기 때문인지 사기 전체를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와츤의 냉철함과는 비교되게 중국의 사학자들은 사마천을 민중의 역사와 문학 민주화의 주창자라고 칭송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점은 좀 무리한 해석일 수도 있지만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다면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다만 중국의 학자들은 사마천을 이용해 역사적 완벽성이라는 주장을 통해 자신들 중심의 역사관을 펼쳐 나갈 수 있다는 점 또한 유의해야할 것이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와츤의 글은 중국의 학자들 보다는 훨씬 읽기 편하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사마천을 보는 중국학자들의 입장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학설이라는 점이다.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거리낌없이 표명하는 일부 중국 역사학자들의 모습을 보면 그것은 더욱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사만천을 유물론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더 생생하고 인간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자본주의적 사관에 식상해서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다보면 한문이란 글자의 특수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아주 간단한 문장이지만 그 속에 함축된 뜻이 참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은 한문이 가진 장점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앞부분에 있는 중국 학자들의 논문을 읽으면서 기존의 사기에 달려있는 주석과 비교해 본다면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