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1 - 일상생활의구조 -상 까치글방 97
페르낭 브로델 지음 / 까치 / 199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속의 유럽은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종교만 봐도 유럽은 팔레스티나에서 발생한 동방의 종교인 그리스도교를 자신들의 기후에 맞춰 서구화하는데 성공하였다. 즉 동방의 그리스도교가 서구의 종교로 변모되면서 정신과 물질은 같은 자리에 위치할 수 없게되었다.  이들의 기준으로 물질은 천박한 것이고, 정신은 고귀한 것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면서 유럽의 중세는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유럽인들이 후에 자신들의 사고를 정신에서 물질로 옮겨가기 위해서 어떤 일을 했을까. 바로 종교를 바꾸는 것이었다. 근대를 알리는 종교개혁이 상업 중심의 중.북부 유럽에서 큰 호응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종교를 바꿈으로서 유럽인들은 물질은 천박함이란 공식에서 물질을 어떻게 축적하느냐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물질의 축적에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게으름과 나태, 시간의 낭비등등-들을 정당하게 신의 뜻을 수행하며 자본을 축적하는 것에 대한 장애물로 여기게 되었다.  이런 초기 자본주의의 정신은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이란 책을 통해서 완벽하게 설명되어 졌다.

페르낭 브로텔은 근대의 구조를 거의 변하지 않는 형태로 지속되는 일반인들의 삶, 교환활동이 조직되는 부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조직적으로 제어하는 자본주의로 파악하고 있다. 물론 여기의 책은 가장 처음에 해당하는 불변의 상태 속에 있는 일반인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유럽의 기본구조는 마르크 블로크도 말했듯이 연장되는 중세의 시간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유럽의 사회가 시간상의 흐름 속에서 발전해 나가고 있지만 중세적인 형식을 쉽게 벗어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역시 중세적인 유럽의 이해 속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책의 앞머리에 "18세기에 마무리된 생물학적 앙시앵 레짐"이란 장을 배치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브로텔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세적인 감각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브로텔을 유럽의 모든 분야를 건드리면서 중세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면서 중세적인 요소가 어떻게 유지되거나 혹은 변형되는가를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중세적인 유럽은 근대에도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유럽인들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중세적인 체제를 완벽하게 변형시키기 보다는 중세적인 체제를 유지하는 세개의 기둥을 시대상에 맞춰 대체하는 것으로 변화를 모색하였다는 점이다. 이 결과 종교는  자본으로 계급은 자본가로 농민은 노동자로 대치되었을 뿐이다. 이렇게 바뀐 명칭 속에서 유럽은 근대적인 봉건사회를 건축해 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럽의 이러한 정신적 성향은 식민지 지배를 통해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유럽인들은 식민지지배에서 자신들의 봉건제도를 그대로 이식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거대한 장원을 중심으로 식민지인들을 지배하는 구조는 중세 유럽이 시간과 장소만을 바꾸었을 뿐 절대 변하지 않은 요소라 할 수 있다. 결국 브로텔이 말하고자 하는 세계는 현대화된 중세를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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