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씨앗 5 가지
헨리 홉하우스 / 세종(세종서적) / 1997년 2월
평점 :
절판


여기서 말하는 다섯가지 씨앗이란  키니네, 설탕, 차, 면화, 감자를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각 씨앗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붙이고 있다. 열대림을 개척한 키니네, 카리브해를 검게 물들인 설탕,. 아편 연기에 스러진 차향, 남북을 갈라놓은 면화, 신대륙 이주를 부추긴 감자라는 부제를 통해서 이 씨앗이 파생시킨 역사적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키니네는 말라리아- 이 질병의 이름은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하였다. 나쁜이란 말라와 공기의 아리아가 합성된 말이다-의 치료제로 모기가 창궐하는 곳에서는 쉽게 보는 질병이었다. 우리의 기록에도 학질이란 명칭으로 자주 등장하는 병이 바로 말라리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을 뗀다라는 말의 주범이기도 하다. 하지만 말라리아의 본고장은 열대지방이라 할 수 있다. 서구 유럽이 지리상의 발견 이후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와 동남아시아로 진출하면서 가장 먼저 만난 질병이 말라리아였다. 3일열이라고 불릴만큼 주기적으로 열이나고 온 몸이 떨리는 이 질병은 목숨까지 잃을 정도로 위력이 대단하였다. 하지만 키니네가 말라리아 치료제로 약효가 인정되자 세계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노동력의 대이동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노동력의 이동으로 인하여 미개척지가 급속히 개발되는 효과를 가져왔지만 그에 따른 서구 제국주의의 침투 또한 용이하게 되었다.

키니네가 백인 제국주의자들의 미개척지로의 이동을 가능하게 한 것이라면 설탕은 아프리카 흑인들의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강제적 이동을 촉발한 주범이라 할 수 있다.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고 원주민들이 조직적으로 학살된 이후 노동력이 부족해진 스페인 사람들은 궁여지책으로 아프리카의 흑인을 이 지역에 대량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른바 노예무역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바로 그 촉매가 사탕수수에서 나오는 검은 설탕과 그에따른 부수적인 산물인 럼주였다. 설탕, 흑인, 럼주에 의한 대서양을 사이에둔 아프리카, 유럽, 아메리카의 삼각무역은 유럽 제국주의의 자본축적을 가능하게한 시작이었다.  이 자본의 축적으로 유럽은 다른 대륙보다 먼저 산업혁명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밑바닥에 카리브해에 강제로 이주한 흑인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깔려있는 것이다.

차는 근대 이전까지 도자기와 함께 아시아의 대표적인 수출품이었다.  차와 도자기는 유럽의 은을 중국으로 유입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차와 도자기는 아주 이상적인 결합체였다. 차를 수출할 때 배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바닥짐 대용으로 도자기를 이용하였다. 이 선단이 유럽에 도착하면 차와 바닥짐으로 이용한 도자기를 함께 처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유럽의 상품을 싣고 바닥짐 대신 모래를 싣고 왔다. 중국으로서는 이런 거래에서 손해볼 소지가 전혀 없었다. 당시 유럽은 아시아와의 무역에서 만년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유럽은 이런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아편을 차와 도자기의 대체품으로 활용하였다. 이제 중국으로 오는 유럽의 배는 아편을 싣고 와서 중국상인들이 그랬던것처럼 도자기를 바닥짐으로 싣고 유럽으로 향했다. 이 결과 중국의 재정은 급속히 악화되고 말았다. 이제 반대로 중국의 은이 유럽으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을 저지하기 위해 아편전쟁이 일어나고 아시아 제국은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목화는 섬유 가운데 가장 완벽한 조건을 갖춘 소재라고 볼 수 있다. 가볍고, 흡수성이 좋으며 게다가 보온성까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목화의 가장 큰 재배지는 북아메리카 남부였다. 대체로 북위 37도선 이남지역에서 목화는 담배와 함께 아메리카 남부의 부를 축적하게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 하지만 남부는 조방농업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것은 남부가 노예를 기반으로 둔 사회였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남부는 거대한 부를 흡수한 만큼 기계화되지 못하고 있었다. 남부의 모든 것은 노예들의 손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손이 많이가는 면화산업 역시 노예들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불가능하였다. 하지만 유럽에서 조면기가 개발되고 아메리카 북부에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면화로 만든 수입품에 관세를 부여하는 문제로 남과 북은 대립하게 되었다. 지주로 구성된 남부의 입장에서는 관세의 부과가 이롭고,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사회를 구성하고 있던 북부의 입장에서는 관세의 폐지가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이 결과 남과 북은 전쟁에 돌입하게 되고, 북의 승리로 아메리카 사회는 농업주도의 사회에서 공업주도의 사회로 급변하게 되었다.

감자는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남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전래된 식물이다. 이 식물이 처음 전래되었을 때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조만간 이 식물에 의존하게 될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였다. 감자는 유럽인들의 주식이 되었고, 그 의존도가 특히 아일랜드에서는 높았다. 아일랜드는 그 지리적 위치에 따라 물고기는 풍부하였지만 식량은 전량 이웃인 잉글랜드를 통해 수입하고 있었다. 하지만 감자가 이 섬에 전래되면서 주민들의 식생활이 변모하게될 만큼 감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이 결과 감자의 작황에 따라 아일랜드는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결국 1845년 감자잎마름병에 의한  4-5년간의 대기근이 닥치자 아일랜드는 파국에 직면하게 되었다. 영국은 고의적으로 아일랜드에 원조를 지체함으로서 비극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 결과 아일랜드의 9백만 인구 가운데 약 5백만명 이상이 일차세계대전 이전까지 아메리카로 이주하였던 것이다. 아일랜드의 비국은 대체작물이 없는 농업방식, 영국에 의존하는 식량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역사에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아일랜드의 사례는 식량의 자급화라는 문제에서 지금도 고려해봐야만할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씨앗을 통해 광범위한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이들이 파생시킨 파급효과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씨앗의 의미는 과거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미래는 이 씨앗들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될 수 도 있다.  그 가공할 씨앗의 영향력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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