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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
김호동 지음 / 까치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5세기경 초기 기독교의 교리 형성과정에서 이단으로 몰리게 된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은 더 이상 서구 세계에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 결과 네스토리우스의 추종자들이 선택한 것은 서구의 지배에서 벗어난 곳을 찾게 되었다는 점이다. 당시 로마제국은 지중해를 內海로 한 대제국을 건설하고 있었기에 네스토리우스 교도들은 로마와 강력한 라이벌 관계에 있던 페르시아지역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 결과 지금의 시리아와 이란 지역으로 이주한 이들은 비로소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 지역에는 예로부터 페르시아의 국교로 지정된 강력한 조로아스터교가 있었다. 네스토리우스교도들은 정착과정에서 이들 기존의 종교로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았다. 이들이 박해를 받은 이유는 서구세계와 연결되어있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이를 불식하기 위해 네스토리우스교는 424년 페르시아교회의 완전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7세기경 페르시아가 이슬람세력에 점령된 후에도 네스토리우스교는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인도. 몽골. 중국 등지로 포교활동을 계속하였다. 이슬람의 확장이 네스토리우스교를 더욱 동쪽으로 확장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 결과 네스토리우스교는 유목민의 종료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네스토리우스교는 초원의 길에 위치한 오아시스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공동체였다. 그러기에 네스토리우스교 공동체는 강력한 외부의 힘에 아주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네스토리우스교는 자신들을 보호해줄 강력한 후원자를 얻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은 거대한 이슬람 제국의 거대한 바다에 외롭게 고립되어 있는 섬과 같은 처지였다. 그러기에 이슬람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초원의 유목민족을 자신들의 보호자로 선택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 유목민족이 강력한 제국을 건설할 때는 네스토리우스교는 교세를 확장할 수 있었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극심한 박해를 받아야만 했다.
이런 네스토리우스교의 특성이 서구에 기독교 왕국 혹은 프리스트 존의 전설로 알려지게 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네스토리우스교는 5세기 이후 단절되었던 서구 세계와 접촉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접촉을 통해서 네스토리우스교는 가톨릭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초원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을 방어해야만 하는 모순에 접하게 되었다. 당시 네스토리우스교를 접했던 수많은 서구의 수도사와 상인들은 그들의 종교가 서구의 기독교와는 상당히 이질적인 것이라는 점을 기술하고 있다. 즉 이런 이질감은 네스토리우스교가 기독교의 한 갈래이면서도 서구의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14세기 경 초원지역을 휩쓸었던 페스트의 위력과 자신들의 옹호자였던 몽골족 지배자들의 이슬람교와 라마교로의 개종은 이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최후의 일격은 이슬람 세계의 위대한 정복자이며 잔인한 티무르 이 랭-영어권에서는 터멀레인-에 의해 시행되었다. 이 결과 네스토리우스교는 초원의 길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에서도 유목제국인 원이 소멸하고 한족 중심의 명이 건국되면서 원에 의해 우대를 받던 외래 종교들이 극심한 박해를 받으며 약화되었다. 이 결과 중국과 몽골 지역에서 네스토리우스교의 흔적은 간간히 발굴되는 십자가 유물만이 그들의 사라진 역사를 말해줄 뿐이다.
네스토리우스교의 흥망과 쇠퇴는 한 종교가 지역사회에 동화를 거부하고 권력에만 의지할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이 책은 또한 종교적 열정에 의해 가속화된 서구의 동방에 대한 관심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한 종교의 운명을 추적한 책이지만 르네 그루쎄의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의 또 다른 면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정수일 교수로부터 촉발된 <씰크로드학>이 이제는 한 단계 더 발전된 형태로 세부화되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네스토리우스교의 교리는 정통 기독교회가 <그리스도는 하나의 인격으로서 동시에 신이자 인간>이라는 것에 반하여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과 인성이라는 분리된 두 가지 인격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네스토리우스파들은 성모 마리아를 신을 낳은 어머니로 보지 않는다. 이들의 이런 주장은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되고, 451년 칼체돈 공의회에서 재차 이단으로 단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