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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가을 ㅣ 우리 시대의 고전 1
요한 호이징가 지음, 최홍숙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5월
평점 :
중세의 가을은 장엄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장엄함은 낡은 것이 죽고 새로운 것이 잉태되는 순간이다. 여기서 가을이란 단어를 글자 그대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가을은 조락의 계절이면서 결실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호이징가는 가을이란 말 속에서 중세의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중세 말기는 시스템적으로 보자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시기였다. 종교와 정치의 관계는 명확해졌고, 신분제 역시 확고한 형식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기사도는 귀족들의 양식화된 사랑의 한 형태로 규범화되어 있었다. 외형적으로 중세 말기의 모습은 완벽 그 자체였다. 당시 중세인들은 한세대도 지나기 전에 엄청난 변화가 시작될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중세 말기의 삶은 그 어떤 형식에 의해 정형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닭이 울면 일어나 일을하고 수도원의 종이 울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삼종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해가 지면 집에 돌아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였다. 주일이 되면 주님을 찬미하기 위해 교회에 나가 미사를 드렸다. 사람들은 교회에서 결혼을 하고 죽으면 장례식을 치뤘다. 어떻게보면 중세 말기의 모습은 한가로운 빅토리아시대의 잉글랜드 농촌의 모습처럼 보였을 것이다. 기사들 역시 총포가 발명된 이후 달리 할일이 없었다. 이제 자신들은 전쟁터의 주역이 아니었다. 말도 탈줄 모르는 평민들이 군대의 중추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무겁고 번잡한 장비대신 가벼운 전투복에 활과 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기사들은 더 이상 자신의 용맹을 과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이런 상실감은 기사도의 사랑문학으로 어느정도 해소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기사들은 자신들의 의식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이 정형화된 의식 자체는 앞으로도 계속 살아남을 것이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교회에 나오고 있었지만 믿음은 그리 깊지 않았다. 사람들은 종교적인 것을 모두 이미지로 이해하고 있었다. 십자가, 성체, 성혈, 성인과 같은 이미지로 이해되는 종교는 당연히 형식적인 것으로 변모할 수 밖에 없었다. 이 형식성은 앞으로 일군의 개혁적인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터였다. 중세의 예술 역시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종교가 형식화되면서 예술 역시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성이 다분히 있었다. 중세 말기의 상황은 완벽한 가운데 모든 것이 형식화되어 버리는 시기였다. 즉 화석화되면서 어떤 새로운 틀이 나타나지 않는한 쓰러진 거대한 공룡처럼 스스로의 무게에 질식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중세는 질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호이징가가 책의 첫머리에 기록한 것처럼 중세는 지금보다 무려 5세기나 젊었기 때문이었다. 이 젊은 자신의 모순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중세는 모순의 해결책으로 고전을 선택하였다. 15세기의 중세인들은 자신들의 삶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새로운것에 대한 도전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지켜온 것이 영속되리라는 확신에서 오는 자신감이었다. 중세는 아직 살아있고 그 사상은 비관적이고 운명적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마음과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바로 코 앞에 새로운 산들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중세인들에게는 아직 겨울이 남아있었다. 그 겨울을 지낸 다음에 봄을 맞이해아 하는 것이 순리였다. 그래서 중세의 가을은 장엄과 비극성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