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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세계 ㅣ 현대지성신서 2
프리드리히 헤르 지음, 김기찬 옮김 / 현대지성사 / 1997년 12월
평점 :
절판
프리드리히 헤르가 바라보는 중세의 세계는 1100년에서 1350년까지의 기간으로 12세기에서부터 14세기 중반까지의 역사이다. 헤르가 보는 이 시기는 제1차 십자군 운동으로 시작되어 백년전쟁의 시작에서 끝을 맺는다. 즉 헤르는 아랍과 유럽의 접촉에서 시작하여 귀족계급이 몰락하기 시작하는 초입에서 이 책을 마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헤르가 다루고 있는 시대는 중세문명이 결실을 맺는 최전성기를 기술하고 있는 셈이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중세의 전성기를 시작하는 사건은 십자군 운동이라는 전쟁을 통해서였다. 이 십자군 전쟁은 교회의 권위와 교황권의 위력이 살아있음으로서 가능한 종교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중세의 전성기가 마감하는 것 역시 교회와 국가와의 갈등에서 교황권이 왕권의 조력자로 전락하면서 막을 내린다. 실제로 로마의 교황청은 1309년에서 1377년까지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옮겨와 있었다(아비뇽 유수). 이는 교황이 프랑스왕의 세력권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실제로 이 기간 동안 교황은 프랑스인이 선출되었다. 이후 교회는 속세의 권력보다는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더 노력한다.
그렇다면 헤르가 바라보는 절정기의 중세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정치적으로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시칠리아에 이르는 곳에서 아랍의 세력이 점차 유럽의 공세로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십자군의 원정으로 팔레스티나에서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이 지역에 십자군 제후들의 왕국이 건설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상업이 발달하면서 도시와 길드가 번성하였다. 기사도라는 새로운 규범이 나와 귀족사회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종교에서는 교황권이 최절정기에 달하면서 교회가 중세의 정신적인 지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이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왕권이 강화되고, 잉글랜드에서는 의회정치의 발전으로 입헌군주제의 틀이 다져진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이 처음 출현하고 아랍의 학문이 유럽에 본격적으로 소개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이 시기는 유럽이 몸을 부풀리는 시기였다. 유럽은 그동안의 후진성을 만회하고자 하듯이 모든 것을 왕성하게 흡수하고 있었다. 그 왕성한 흡수력은 교회의 적절한 제어로 한계를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이제 유럽은 정치. 경제. 종교적으로 완벽한 자신들만의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었다. 이 시스템은 이제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아랍의 시스템과 겨루어야만 할 운명이었다. 여기서 승리하는 자들이 지중해세계와 아프리카를 지배할 수 있었다. 그 시작이 바로 이 시기였던 것이다.
헤르는 이 시기의 왕성한 사회적 발전에 대해 전 분야를 섭렵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헤르가 관용적이고 탄력적인 그리스도교 세계라고 묘사했던 12세기의 상황은 14세기에 들어오면서 불관용과 경직된 제도로 변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된 것을 헤르는 신앙의 조항들이 하나의 교리로 규정된 것에 원인을 두고 있다. 물론 이 시기에 헤르의 지적뿐만 아니라 페스트와 같은 질병에 의한 유럽의 인구 감소와 이에 따른 성직자들의 질적함량 미달과 같은 요소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종교적 완고성은 그동안 개방적이었던 유럽사회를 닫힌 사회로 몰고가는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이것은 종교에 의해 촉발된 또 다른 퇴보였다고 할 수 있다.
중세 유럽의 두 주인공이었던 라틴어권과 게르만어권의 움직임은 사뭇 달랐다. 라틴어권들이 대양으로 자신들의 눈을 돌린 반면 게르만어권은 슬라브족이 살고 있는 동방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 결과 유럽은 이 시기에 동쪽의 유럽과 서쪽의 유럽이 형성되었다는 점도 헤르는 말하고 있다. 즉 헤르에게 중세의 전성기는 이후 유럽세계를 규정짓는 모든 것이 형성된 시대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