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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빛과 그림자 - 그림과 함께 떠나는 중세 여행
페르디난트 자입트 지음, 차용구 옮김 / 까치 / 2000년 4월
평점 :
절판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중세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은 <스테인드글라스stainedglass>라고 생각한다. 그 오묘한 빛의 조합과 작은 유리 조각 하나 하나가 합쳐저 하나의 주제를 완성해 나가는 그 과정이 중세가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스테인드글라스는 중세가 추구했던 세계가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물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 스테인드글라스는 빛이란 매개물이 있어야만 제대로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가 있다. 이 빛은 중세에는 누가 뭐라해도 <神>이었다. 신의 은총이 허락하지 않는한 그 어떤 것도 스스로 광채를 발휘할 수 없다는 상징으로서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드러난 중세의 자화상인 것이다.
중세를 따라 가다보면 자신의 고정관념이 부서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중세와 암흑이라는 등식이다. 사실 중세가 암흑이라는 논지를 펼친 사람들은 인문학자들과 종교개혁자들이었다. 이들에게 중세를 암흑으로 표현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 어둠을 뚫고 새로움이 탄생하는 순간을 강조하기 위해 그 전단계를 암흑이라고 불러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페르디난트 자입트 교수는 중세의 빛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그 빛은 중세가 확장되어 가는 영광의 순간이다. 사방으로 뻗쳐나가는 그리스도의 깃발을 통해 중세는 자신들의 신앙이 절대적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이것이 빛이라면 그 확신을 너무나도 신봉한 나머지 결코 타협하지 않은 고집스런 모습은 어둠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대비적인 중세의 역사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분명 빛의 영광이라고 생각한 순간 그 이면에는 잔인함의 어둠이 자리잡고 있는 중세.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힘차게 동방으로 전진해 나가던 십자군의 영광 뒤에는 예루살렘의 대학살이란 어둠이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서구 유럽의 중세는 모순의 역사였다. 새로운 기술을 통한 농업혁명으로 모두가 부자가 될 것만 같았던 시대에도 사회에서 추방되고 격리된 소외된 계층이 엄연히 존재했다는 사실. 유럽 산업발달에 커다란 공헌을 한 도제제도와 무역동맹의 배타적 고립성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종교가 일상생활을 지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견고함에 대한 확신성을 버리고 마녀재판을 선택한 지배계층의 결단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중세는 수도원의 시대라고도 한다. 수많은 선구자들이 종교적 열정으로 신을 향한 봉사를 다짐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베네딕트 수도회, 프란치스코 수도회, 도미니쿠스 수도회... 이들은 신을 향한 열정에 자신들의 모든 것을 던지고 그 이상을 지상에 실현하고자 힘썼다. 하지만 그 이상이 지나칠 때 이단이 발생하였다. 중세만큼 이단이 성행한 시대도 없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수도원을 중심으로한 종교적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시도는 왜 실패하였을까. 종교를 부패하게 만든 것은 이단도 정치권력도 아니었다. 다만 억제하지 못하는 인간의 탐욕과 한조각의 황금이었던 것이다. 결국 종교의 부패는 중세를 분열시키고 근대를 여는 원인이 되었다.
중세는 빛을 너무도 과신하였는지도 모른다. 빛은 언제나 우리의 머리 위에 빛나고 있다. 그 빛을 맞이하는 것은 순전히 우리들의 판단의 몫이 되는 것이다. 만약 중세가 빛을 가리는 장막을 부수고 벽을 부수어 모든 곳에 빛이 스며들게 하였다면 새로운 중세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결코 근대는 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세는 빛을 과신한 나머지 자신들이 움직이지 않고 아쉬운 자들이 그늘에서 양지로 걸어나오도록 기다렸던 것이다. 중세의 인간들은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늘도 깊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중세의 빛과 어둠은 서로의 영역과 접해있으면서도 융합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런 사정은 중세로부터 1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는 어찌보면 연장된 중세라고 불러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