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문명교류사
정수일 지음 / 사계절 / 2001년 11월
평점 :
절판


정수일 선생의 <두꺼운 책 시리즈> 가운데 한 권이다. <씰크로드학>과 <문명 교류사>를 읽은 분들이라면 이 책의 내용이 더욱 가깝게 다가올 것이다. <씰크로드학>이 씰크로드 그 자체만을 크게 부각시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면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에 이르는 긴 과정을 교류라는 측면에서 기술하고 있다. 이 교류에서 정수일 선생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나의 주목을 끌었던 것은 보석, 그 가운데서도 玉이었다. 그동안 이런 종류의 책을 꽤 읽었다고 생각한 내 자신도 보석玉의 교류를 통해서 인류의 문명사를 재구성하는 선생의 방식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우리의 고대 유물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이 曲玉이란 사실을 배웠으면서도 그 원류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나의 식견이 아직도 한참 부족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수일 선생은 이 책을 통해서 시종 차분하게 그리고 논증적으로 인류의 문명 교류를 조목 조목 설명해 나가고 있다. 이런 차분함과 세세함이  이 책의 설득력을 더욱 배가시켜 준다.

인류의 문명은 독자적이라기 보다는 상호보완적이며 협력적이라는 것은 이제 재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로 확정되었다. 다만 이 교류의 방향에 대해서만 설왕설래하고 있을 뿐이다.  서양의 사가들은 헬레니즘 문화라는 등식을 통해 서에서 동으로, 동양의 사가들은 비단길이란 통로를 통해서 동에서 서로의 이동을 주장하고 있다. 즉 하나의 같은 사실을 어느 입장에서 보느냐를 가지고 설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서양의 독불장군식의 주장과 동양의 아전인수식 주장에 대해 똑같이 반박하고 있다. 왜냐하면 역사를 통해서 볼 때 문명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물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즉 문명의 교류는 동.서양의 활발한 교류에 의해서 가능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저자는 역사적인 유물을 통해서 하나 하나 설명해 나가고 있다. 그 문명 교류의 통로가 바로 씰크로드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저자가 생각하는  씰크로드는 초원의 길을 통과하는 육지의 길과 광동- 말라카 해협 - 인도의 캘리컷 - 아라비아 반도의 아덴을 지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이어져 지중해를 거쳐 유럽의 내륙으로 퍼져 나가는 해상의 씰크로드도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씰크로드로 인한 문명의 교류는 우리가 일차적으로 알고 있는 초원 유목민과 아랍제국의 문명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의 인도 문명권과의 교류도 매우 컸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문명의 교류라는 것을 이야기 하면서 우리의 좁은 식견을 타파하려는 의도도 가지고 있다. 즉 씰크로드라고 할 때 우리는 이것을 말 그대로 <비단길>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문명의 도로를 하나로 이해할 때 우리는 문명이 동에서 서로만 흘러갔다는 일방적인 주장에 파뭍힐 위험이 있다.  하지만 이 길을 따라 서양-로마-의 문명이 중국으로 흘러들어왔다는 사실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여담이지만 중국 고대의 기록에 보면 서쪽으로 가면 불을 뿜어대는 인간이 사는 곳이 있다고 하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는 로마의 서커스단이 중국에 와서 불을 뿜는 묘기를 보여준 것을 기록한 것은 아닌지... 각설하고,  비단길은 그 자체만으로도 고대의 문명이 동에서 서쪽으로 일방적으로 흐른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로마와 인도 그리고 중국이라는 고대의 가장 번성했던 국가들은 육지의 비단길과 해상의 비단길을 통해 서로 상호 교류를 하므로로서 자신들의 문명을 더욱더 풍요하게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자신의 문명을 다른 제국에게도 전해 줌으로서 문명상호간에 연관성을 갖는데 일조 하였던 것이다. 이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우리의 일방적인 동양 우월주의와  서구의 주자인 선진 서양, 후진 동양이란 신화가 얼마나 허구적인 토대위에 구축되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낡은 토대를 허물고 새로운 토대를 쌓아올릴 때 이 책이 의도한 문명의 상호교류가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