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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형성 ㅣ 현대지성신서 16
R.W.서던 지음, 이길상 옮김 / 현대지성사 / 1999년 10월
평점 :
절판
서유럽의 중세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선택의 다양함 속에는 중세라는 시대가 단순하게 정의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반증일수도 있다. 그렇다면 보기에는 아주 단순하게 보이는 중세-신분제사회, 봉건제도-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그동안 많은 유럽의 학자들에 의해 중세의 다양한 면을 조명한 책을 통해 바라 볼 수 있었다. 주로 아날학파들의 진지한 노력 덕에 중세의 세세한 부분을 파악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이 점이 중세의 전체를 바라보는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지는 않는지.
이 책의 저자인 리차드 윌리엄 서던은 <중세의 형성>을 언어권에서부터 시작해 나간다. 즉 중세의 유럽의 공동체는 단일한 것이 아니라 '라틴어권'과 '게르만어권'이 협력하여 하나의 유럽 공동체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 언어의 공동체가 북과 남으로 동과 서로 확장되면서 아랍과 슬라브세계, 무어족의 세계와 노르만의 세계를 점령 혹은 기독교화 시키면서 중세의 다양성에 큰 기여를 한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서던은 이런 다양성의 혼합을 중세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중세가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무늬를 갖게되었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는 약간의 충격으로 다가온다. 서던에 따르면 중세가 형성되면서 이미 다양한 무늬는 심어져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다양함이 어떻게 중세라는 세계 속에서 융합이 될 수 있었을까. 그 원동력이 교회였던 것이다. 실제로 교회의 공식 언어였던 라틴어는 중세 전기간을 통해 외교의 언어이면서 학문의 언어였다. 중세시대 교회의 언어 라틴어를 안다는 사실은 종세가 확장되어간 모든 지역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이 결과 교회는 자신들의 언어와 종교로 중세의 후진적인 틀을 자신들의 세계관에 맞추어가면서 세련된 중세로 변모시켜 나갈 수 있었다. 물론 교회는 자신의 세계관을 유럽이란 땅에 구현시키기 위해 세속의 권력과 경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경쟁에서 교회가 우위를 점하게 되는 순간 중세는 정치. 사회. 종교가 결합되는 완벽한 중세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서던은 중세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972년부터 1204년에 걸쳐서 고찰하고 있다. 서던에게 이 두개의 연대는 중세가 형성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년도로 인식하고 있다. 젊은 학자인 게르베르투스가 무어인의 과학을 배우고 논리학을 연구하기 위해 랭스로 떠난 972년은 서던에 따르면 정신사적인 유럽이 형성되는 시작의 해였던 것이다. 이 시기 이후 유럽은 잊었던 그리스시대의 사상을 아랍세계를 통해 지속적으로 배우게 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그리스의 철학을 자신들의 사상으로 소화시켜 중세의 신학과 철학을 완성시키게 되는 것이다. 즉 972년은 중세의 머리가 형성되는 시작의 해였던 것이다. 그리고 1204년은 경제사적인 유럽이 완성되는 해인 것이다. 즉 이 해에 콘스탄티노플이 4차십자군의 노략질에 의해 무너진 것이다. 이를 통해 서방세계가 이미 점령하고 있던 팔레스티나의 해안지방과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이탈리아의 도시를 연결하는 지중해가 드디어 아랍의 손에서 유럽의 손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는 유럽이 앞으로 지중해 상권을 장악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이는 그동안 아랍세계에 눌려있던 지중해에서 처음으로 유럽의 존재를 알린 사건으로 이후 지중해에서 유럽과 아랍이 해상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게 된다. 이 지중해를 다시 유럽이 일부나마 장악한 사건은 사상적인 사건보다 더 큰 의미를 갖게되는데 이는 지중해가 로마시대 <우리들의 바다>로 불린 이후 처음으로 서양이 동양으로부터 부분적으로나마 제해권을 되찾은 것이기 때문이다.
서던은 이 두사건을 통해 유럽의 중세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물론 서던은 정신사적인 유럽은 형성은 되었지만 그 완성을 위해서는 아직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함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서던은 그 중요성을 당대인들은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갔다는 점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두 사건은 유럽이라는 세계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정해놓은 중요한 사건이라고 보았다. 이제 유럽은 중세시대의 지도 속에서 거대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둘러싸인 고립된 땅이 아니라 당당한 자신감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로 자신들의 발걸음을 옮길 준비를 하게 된 당당한 한 대륙의 주인이 된 것이다. 중세 유럽을 형성하게 한 이 두 사건을 통해 유럽중세의 정치. 경제. 문화 전 방면에 걸쳐 심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바로 그 시작을 우리에게 이 책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