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풍속으로 본 12인의 로마 황제 1
수에토니우스 / 풀빛 / 1998년 12월
평점 :
품절
수에토니우스의 풍속으로 본 12인의 로마황제는 <풍속으로 본>이란 문장이 암시하듯 제정 초기의 로마의 뒷모습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특이하게 로마의 황제 자리에 오르지 못한 캐사르를 황제의 첫머리에 올려놓았다. 이는 아우구스투스 이후 네로까지 이어지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시조로 대우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렇듯 이 책은 시작부터 모든 역사서의 규칙같은 것은 외면한다. 모두 2권으로 출간된 책의 1권에는 캐사르. 옥타비아누스. 티베리우스를 다루고 있다. 이들 3명의 지도자는 <대리석의 로마를 건설>하는데 초석을 다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들 3명은 인간적인 약점 또한 공유하고 있었다. 낭비벽이 심했던 캐사르, 만성 해소병에 의심많고 잔인했던 옥타비아누스, 냉혹하고 음란했던 티베리우스의 됨됨이를 보면 역사의 발전에 있어서 지도자의 취향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캐사르는 자신의 낭비벽을 타인에 대한 베품으로 바꿔 후일 삼두체제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옥타비아누스의 속을 알 수 없는 음흉함은 냉혹한 정치투쟁에서 자신의 야망을 감추는 무기가 됨으로서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다. 티베리우스 역시 두 선임자처럼 카프리섬으로 은둔을 택함으로서 제국의 모든 신민들에게 보이지 않는 권력의 두려움을 극대화하였다. 즉 황제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모든 사람들에게 인식시켰던 것이다. 이후 로마의 황제들은 이 세사람의 특징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형태를 보이게 된다. 다만 다른 점이라고는 이 세가지 형태의 여러가지 조합일 뿐이란 사실이다.
로마인 수에토니우스의 황제전은 그리스인 플루타르코스의 전기와는 약간 다른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리스인이었던 플루타르코스가 인물 개인의 역사와 그 인물의 삶이 형성된 시대의 역사와 관련하여 저술하고 있다면 수에토니우스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면에만 촛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또 수에토니우스는 역사적 사건을 알 수 있는 날짜라든가 배경같은 것을 기술하지 않아 이를 역사적인 자료로 이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단점을 안고 있다. 그리고 수에토니우스는 인물의 전기를 기술함에 있어 정해진 방식의 틀에 의거하여 기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가계-가문-혈통과 같은 조상의 이야기에서 왕이 되기까지의 이야기, 그 다음에는 왕이 된 이후의 이야기가 아주 똑같은 방식으로 모든 인물들에게 되풀이된다. 이런 방식의 특징은 국가적인 사건이 개인의 판단에 의해 결정되고 마는 결점이 생겨난다. 한 예로 네로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이야기되는 로마의 방화사건은 당시의 여러 복합적인 사건이 얽히고 설킨 가운데 일어난 일이지만 수에토니우스는 이를 네로의 정신병적인 말한마디로 요약해 버림으로서 모든 역사적 책임을 네로에게 집중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수에토니우스의 전기에는 다른 역사서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풍부한 사례들이 놀랄만큼 많이 들어있다. 수에토니우스는 정제되지 않은 일차적인 사료를 그의 저작에 무작위로 삽입한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수에토니우스의 저술이 천대받으면서도 많이 읽힌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로마사의 가십성 이야기는 모두다 수에토니우스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너무 과장이지만).
수에토니우스의 인물전 기술작업을 살펴보면 마치 한 인물에 대하여 모든 언론매체의 기록과 그에 대한 소문을 보고 들은 그대로 메모하여 자신의 이야기 속에 집어 넣은 것처럼 보인다. 이는 수에토니우스의 작품에는 역사가로서의 절대적인 조건인 엄정함이 없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작품은 역사가 아니라 소설의 범주로 취급되는 수모를 당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역사적 진실 위에 수에토니우스의 기록이 덧붙여질 때 더욱더 완벽한 역사적 입체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역사적 인물의 엄숙함에 수에토니우스가 묘사한 지도자의 인간적 천박함이나 경솔함이 접합되면 좀 더 완전한 인간의 모습이 완성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일정한 위치에서 자신의 가치를 뽐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