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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순례자 시튼 (반양장) - 동물기의 작가 시튼이 쓴 자서전, 보급판
어니스트 톰슨 시튼 지음, 작은우주 옮김 / 달팽이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한 사람의 인생을 읽는 다는 것은 행운일수도 있고, 고통일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셔버릴 수 있다면 그것은 행운이다. 하지만 그 고정관념이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면 그것은 고통일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시튼의 자서전은 나에게 행운이었다.
어린 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시튼의 동물기를 오랜 시간이 흐른뒤 다시 읽다보면 글의 행간에 언뜻 언뜻 비치는 잔인성에 깜짝 놀란다. 특히 <카람포의 이리왕 로보>의 이야기에서 시종일관 늑대에게 증오심을 비치는 글을 읽다보면 로보와 브랑카가 인간의 삶에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가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름다운 양의 뿔을 얻기 위해 추적하는 사냥꾼의 이야기에서는 감동보다는 차라리 치유불능적인 인간의 아집에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수 밖에 없었다. 확실히 시튼의 동물기는 시간의 변화에 따라 읽으면 감흥에 약간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시튼의 자서전에서 인상이 깊었던 것은 자신의 가문에 관한 이야기를 아주 장황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론은 자신의 핏줄에는 영국의 귀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시튼의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인이었지만 심정적으로는 식민지의 본고장이자 자신의 선조들의 터전인 대영제국의 사람임을 고백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에게있어서 자신의 신분을 확인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절차였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연에 대한 관찰능력은 이런 것과는 상관없이 매우 탁월하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이 조사한 조류의 깃털을 하나 하나 세어서 기록하는 모습을 볼 때 그 치밀함에 경외감마저 들 정도였다. 그는 자연과 지속적인 교류를 이루기 위해 야생에서 생활하는 것을 즐겼고, 그 생활의 일부분이 사냥이었던 것이다. 그에게 사냥은 스포츠이자 오락이었고, 삶의 한 방식이었다. 이런 취미는 일생을 통해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그가 대영제국의 베이든 파월 경이 만든 보이스카웃의 미국판이 우드크래프트 연맹의 창설자가 되었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베이든 파월은 보이스카웃을 통해 미래의 백인 제국주의자들을 양성하려하였고, 시튼은 우드크래프트 연맹 운동을 통해 거대한 미국을 이끌어나갈 미래의 지도자를 양성하려 하였던 것이다. 대서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영국에서 시행된 이 제도는 아주 탁월한 것임이 드러났고 그 운동은 약간의 변형을 거치면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시튼이 우드크래프트 연맹을 창설하면서 인디안의 처우 개선보다는 인디안적인 생활방식을 전파하는데만 전념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백인들에게 인디안의 삶을 경험시킴으로서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운동은 아니었다. 단지 인디안 삶의 방식을 빌어와 백인을 위해 민들어놓은 백인들의 놀이였던 것이다. 이런 점이 시튼의 한계가 아니었는지. 물론 당시 미국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넓은 대지와 숲은 이땅의 주인인 인디안이나 자신들의 노동력을 대신해줄 흑인의 것이 아닌 백인들을 위해 하느님이 준배해 놓은 세계였던 것이다. 시튼 역시 이 땅의 풍요로움을 누리고 즐기는 백인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책을 읽으며 이런 결론에 도달한 나의 행운에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는 사실이 부담으로 다가오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