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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리처드 오버리 지음, 류한수 옮김 / 지식의풍경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차세계대전 중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은 동쪽의 러시아 전선이었다. 드넓은 평원에서 펼쳐진 양군간의 전투는 어느 한쪽이 완벽하게 절멸되어야만 하는 제로섬zero sum게임과 비슷한 것이었다. 히틀러는 < 독일민족의 순결함을 볼세비키의 더러운 손길로부터 지키기 위한 성전>으로, 스탈린은 어머니인 대지,러시아를 침입한 침략자를 격퇴하기 위한 <조국전쟁>으로 승화시키며 수많은 젊은이들을 죽음의 강물로 밀어 넣었다.
이제까지 이차세계대전에 관한 戰史는 서구의 시각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것은 전쟁의 가장 큰 당사자였던 소련의 체제에 기인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차세계대전의 일반적인 기록은 영국의 분투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전쟁의 분수령이었다고 인식되고 있었다. 이것은 어찌보면 반쪽만의 진실이었던 것이다. 온전한 전쟁의 역사가 기록되기 위해서는 소련의 역사적 사실이 드러나야만 했던 것이다. 이 책은 그동안 가려져왔던 소련의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책이다. 물론 5년에 걸친 전쟁을 5백여쪽이 약간 넘는 책에 기록한다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부분 부분이 또 다른 역사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러시아 전선의 전쟁상황을 알고자하는 사람들에게 개설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차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의 전쟁은 프랑스가 항복하고 사실상 서쪽에서의 전쟁은 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될 때까지 소강상태를 맞이하고 있었다. 대신 영국과 독일은 유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북아프리카에서 더운 전쟁을 하고 있었다. 반면 이 시기에 유럽의 동쪽인 러시아에서는 엄청난 살륙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차세계대전이 1939년 9월 1일 시작되어 1945년 5월 1일 끝났다고 볼 때 러시아 전선에서의 전쟁은 41년 7월 중순부터 종전까지 지속되었다고 볼 때 독.소전쟁이 바로 유럽의 운명을 결정지은 중요한 전투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러시아에서 이 전쟁은 <위대한 지도자 스탈린의 영도하>에 승리한 전쟁으로 기록되면서 러시아 인민들의 불굴의 투쟁은 한 사람의 영광으로 미화되어 버렷다. 물론 이런 역사관은 후르시쵸프의 스탈린 격하운동 이후 약간씩 변해갔지만 90년대 소련이 완전히 붕괴되기까지 하나의 기조를 이뤄왔다. 반면 독일은 전쟁 초기 승승장구할 때는 <총통의 의지와 탁월한 천재적 직관>에 의한 승리로 떠들어 댔지만 패전 이후 이 전쟁은 한 인간의 무모한 도박에 의해 야기된 있어서는 안될 비극으로만 설명되었다. 이 결과 러시아 전선에서 싸우다 죽어간 수많은 독일 병사들의 죽음 자체가 희극이 되고 말았다.
이런 편견을 약간이나마 수정하고 싶다면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시각을 교정하게되면 겹쳐져있던 상이 바르게 보이고, 또는 히미하던 물체가 뚜렷하게 존재하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약간 허망한 생각이 든다. 유럽을 단일한 게르만민족의 영토로 재편하고자 했던 독일은 전 영토의 1/3에 해당하는 프러시아와 오데르-나이세강 이동의 영토를 빼앗기고 자신들의 꿈을 접어야만 했던 반면, 영구혁명론자인 트로츠키를 추방하고 살해한 일국혁명주의자 스탈린은 본의아니게 유럽의 1/3을 지배하는 거대한 제국의 맹주가 되었으니 말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이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