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디드
볼태르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1991년 1월
평점 :
절판


혁명 전야의 프랑스 사회는 매우 긴장된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중세 이래 사회의 큰 축을 이뤄오던 신분제도는 엄청난 도전을 받고 있었고, 신분제 상층의 성직자들과 귀족들의 타락은 이들이 더 이상 사회의 지도적 주류로 존재할 수 없는 한 이유를 제공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신적인 질서보다는 인간 이성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가 시작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새로 대두하기시작한 부르조아지 계급들은 루소나 칸트의 사상을 받아들임으로서 사상으로도 이전의 인간들과는 구분되는 성향을 보이고 있었다. 가진자와 無産者의 대립은 평화적인 타협으로 해결될 수 있었지만 이는 어느 한쪽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캉디드의 이야기는 유럽에서 시작하여 남아메리카를 거쳐 소아시아로 이어지는 여정속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는 풍자와 조소와 경험이 어우러져 하나의 시대상을 이루고 있다. 당시 사회는 압력솥 속의 공기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귀족계급과 종교계급의 무감각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촉매로 작욕하고 있었다.  캉디드는 구시대의 상징인 유럽에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엘도라도로 표현되는 남미로 간다. 여기는 캉디드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의 땅이라고 한다면 비약일까. 하지만 이 엘도라도의 땅에서 조차 계급적 차이가 존재하는 것을 본 캉디드는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그만큼 당시 사회의 계급적 구조는 단단한 성채와 같은 것이었다. 캉디드와 귀네콩트와의 결합이 틀어지는 것 역시 신분의 차이 때문이 아니었던가.


볼테르는 캉디드의 행적을 통해 계몽주의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즉  '무엇이 문제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문제점을 파악해야만 그 해결책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여기서 팡그로스로 대변되는 지배계급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자들의 사고방식이 도마에 오른다. 이들의 낙관주의적 세계관은 개혁의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보았다. 캉디드 역시 이 낙관주의의 세례를 받았지만 자신의 실제적 경험을 통해 낙관주의적 세계관이 모순에 가득찬 것을 깨닫게 되면서 팡그로스의 세계와 결별을 하게 된다.  결국 캉디드는 마지막에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우리의 밭을 경작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므로서 사변적 인간에서 실천적 인간으로 인생의 나침반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실천적 정신이 결국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음은 불문가지이다.


볼테르가 이 책을 쓴지 몇 년 후 프랑스  남부 오베르뉴 산맥의 제보당에서 괴물이 출현하여 사람들을 해치고 잡아먹는 사건이 벌어진다. 3년에 걸친 괴물 소동으로 대략 40여명이 살해되고 100여명 이상이 부상을 당하였다.  프랑스 남부는 이 소동으로 민심이 소요했고, 나중에는 체제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괴물에 의해 흔들리는 인간의 정신은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 그럼에도 이제 인간들은 더 이상 미신의 굴레 속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존재가 아니라 그 운명을 극복하면서 미래를 조명할 수 있는 혜안을 가진 자유의지를 지닌 살아있는 참다운 존재가 되었다.  이 인간적인 상승은 자유.평등.박애의 정신으로 폭발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