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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영웅 살라딘과 신의 전사들
제임스 레스턴 지음, 이현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전쟁에 神이 개입하는 순간 그것은 살육이 아니라 신념으로 변모하게 된다. 즉 신의 이름으로 모든 전쟁 행위에 대한 정당한 면죄부를 부여받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살육이 하나의 신념으로 묘사되는 모순을 무수히 보아왔고 지금도 도처에서 신념을 위한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 전쟁은 클라우제비츠의 말 대로 <외교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외교인 것이다. 즉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인 개념은 <병사들이여...수 천년의 역사가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다. 프랑스, 만세!>라든지 <신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구호에 겹싸여 자국의 이익이 아닌 성스러운 전쟁, 신념의 전쟁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십자군 전쟁은 가장 극명하게 신과 신이 싸운 전쟁이었다. 다만 신의 대리자로서 인간들이 그 과업을 수행했지만 항상 전투의 선두에는 신이 있었다. 초승달의 알라와 십자가의 하느님은 언제나 자신의 병사들을 격려하고 위안하였다. 병사들에게 <죽어라! 죽어라!> 신은 이렇게 외치면서 또 말한다. <나를 위해 죽는 자는 오늘 바로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라고... 이런 구호 속에서 수많은 아랍과 유럽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신을 위해 죽어갔다. 그들의 죽음은 거친 사막의 건조한 바람 속에서 말라 비틀어져 대지의 공기속으로 사라졌다. 그렇지만 그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신의 목소리는 오늘날에도 사막의 바람 속에서 메아리 치고 있다.
<신의 종>이란 겸손한 이름을 가진 쿠르드족 출신의 살라딘과 <사자의 심장>이란 별명을 가진 노르만인과 프랑스인의 혼혈이었던 리차드는 각각 알라와 하느님의 종으로 자신의 역할을 완수하기 위해 역사의 전쟁 속에 뛰어 들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이 믿는 신념과 신앙에 따라 전쟁을 지휘하고 전투를 수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기독교의 전쟁관과 이슬람의 전쟁관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살라딘이나 리차드 두 사람 모두 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자신이 믿는 신의 위대성이 드러날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두 사람이 아주 판이했다. 리차드는 신의 영광을 위해 많은 이교도를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인것으로 이해했지만 살라딘은 자신이 믿는 신 앞에 무릎을 꿇게하는 것이 진정한 영광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았다. 이런 두 사람의 차이는 무차별 학살과 관용이란 모습으로 역사에 나타난다.
이런 신념과 함께 죽음에 임하는 두 사람의 태도 또한 아주 대조적이다. 살라딘은 1192년 십자군과 <라믈레 조약>을 맺는데 이로 인해 십자군은 팔레스티나에서 모든 영토를 상실하고 티레에서 야파에 이르는 좁은 해안협곡지역만을 힘겹게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이로서 1099년 예루살렘이 프랑크인들에게 함락된지 93년만에 아랍의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 과업을 완수한 살라딘은 6개월 후에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의 죽음은 왕의 죽음이라기 보다는 고행자와 같은 죽음이었다. 그의 영원한 맛수였던 리차드는 살라딘이 죽은지 6년후에 찾아왔다. 리차드의 죽음은 자신의 영지인 샌강 근처에 구축한 샤토 가이야르 근처인 샬뤼에서 그의 신하인 리모주 자작이 로마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황금 장식품을 발견한데서부터 시작되었다. 리차드는 당연히 모든 재물은 국왕의 소유이기에 그것은 자신의 것이라고 양도를 요구했다. 그러나 리모주 자작은 그 유물이 자신의 영지에서 출토되었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였다. 이 사소한 말싸움이 최악의 상황인 전쟁으로 발전되었다. 결국 샬뤼성을 포위공격하던 리차드는 화살에 맞아 그 상처가 덧나 진중에서 숨지고 말았다. 연대기 작가들은 리차드의 시신이 부풀어 올라 관뚜껑을 날려버렸다는 이야기를 첨가함으로서 그의 죽음이 결코 왕답지 못했다는 점을 은근히 강조하였다. 리차드는 끝없는 만용과 욕심으로 결국 명예롭지 못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살라딘과 리차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 너무도 대조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다. 당대는 모르지만 후대에 리차드가 서구의 영웅으로 미화된 반면 살라딘이 추구한 관용과 용기는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었다. 오히려 살라딘의 참모습은 리차드의 무모함에 맞설 용기가 없는 소심한 인물로 폄하되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서구의 시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느낄 수 있다. 살라딘의 숨겨진 모습이 드러나면 드러날 수록 리차드의 과장된 모습이 확실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리처드의 본 모습은 살라딘의 관용과 금욕적인 모습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누가 진정한 왕의 자격을 지니고 있었는가를 조용히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서구의 시각에서 바라본 영웅의 모습이 얼마나 허무하고 보잘것 없는 것인가를 또한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