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신화
쟈크 브로스 지음, 주향은 옮김 / 이학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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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날 전나무 숲으로 들어가본 경험이 있는지. 전나무의 쭉쭉 뻗은 숲으로 들어가면 사각 사각 밟히는 '마른 바늘들'의 촉각은 고슴도치위를 걷는다면 이런 기분일까. 그뿐만이 아니다.  전나무 숲으로 들어가면 갑자기 아늑한 느낌이 온 몸을 감싸며 강열한 樹脂의 내음이 오감을 자극한다.

나무의 신화를 읽으면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북구 신화의 생명수인 '이그드라실'로부터 시작되는 나무 이야기는 우주의 나무로 그리고 하늘과 연결되는 신비의 사다리로 변해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나무를 통해 신의 목소리가 '도도네'에서 울려오기 시작하고, 디오니소스의 포도나무로 연결되어 인간이 신과 교통하기 위해 벌인 비밀의 의식으로 나무의 역사는 연장된다. 나무의 일생을 통해 죽음과 부활의 의미가 첨가되고, 마침내는 구원의 십자나무로까지 나무는 확장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얼마나 멋진 구성인가. 생명의 나무에서 시작하여 구원의 십자나무로 돌아가는 나무의 영원회귀는 이 책의 숨어있는 주제이다.

숲은 유럽인들에게는 어쩌면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일지도 모른다. 과거 유럽은 피레네 산맥에서 아르덴의 숲을 지나 독일의 흑림지대를 거쳐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로 이어지는 거대한 삼림지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들이 이 땅에 거주하면서 무분별한 벌채로 그 거대한 숲은 사라지고 말았다. 다만 남아있는 것은 "Es war einmal im Wald...옛날 아주 먼 옛날 숲속에서..."로 시작되는 민담의 구절이나 숲에 대한 히미한 기억 뿐이다. 이 히미한 기억조차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면서 모두 기독교적인 색채를 덧칠하게 되면서 유럽에서 숲의 신화는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기에 유럽인들에게 숲은 더 신비함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이런 히미한 기억의 저편에는 유럽인들이 기를 쓰고 가꾸는 숲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나무의 신화는 신화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숲의 신화가 어떻게 그리스도교적인 신앙으로 바뀌어 가는 가를 추적한 책인 것이다. 물론 읽는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이것은 자유로운 열린 사고가 종교에 의해 닫힌 사고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고의 변화는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게 한다. 이제 유럽인들은 숲을 신화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종교가 그랬던것처럼 자신들의 지친 심신을 위로해 주는 위안물이랄까 뭐 그런 것으로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숲은 그 자리에 오래 전 부터 그대로 있어 왔다는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과 사고방식만이 세월을 따라 변했을 뿐이다. 새삼 인간의 유한함과 왜소함이 돋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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