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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나무야 -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6년 9월
평점 :
느림의 미학이란 말이 있다. 컴퓨터가 일상화된 작금의 세상에서 느리다는 것은 어쩌면 죄악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생활의 모든 리듬을 알레그로에 맞추고 있다. 그러기에 느림이란 어찌보면 시대의 뒤켠에 있는 낡은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낡은 것과 느리다는 것이 동일시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그 반대편의 빠르다는 것과 진보가 동일시되는 것과 같은 사고의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영복 선생은 이성과 마음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로 質과 量으로 대비하였습니다. 선생은 이 둘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추종할 때 우리의 설자리가 척박해 진다는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프로스트가 시에서 읊조리지 않았더라도 여러 갈래의 길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있습니다. 그 길 가운데 우리가 가야할 길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어야 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은 이 길은 택한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늦을 수 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은 금새 잡초에 덮이고 조만간 길이었다는 흔적마저 사라지게 합니다. 그 뒤에 오는 사람은 다시 그 없어진 길을 더듬으며 올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필연적으로 느림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느림의 길은 진보일까요, 수구일까요. 이런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선생의 글을 읽는다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먼저 읽는 것이 도리이겠지요. 하지만 나는 순서를 바꿔 이 글부터 읽었습니다. 앞의 책이 선생의 뼈와 골수라면 이 책은 살과 피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더욱더 선생의 글이 가깝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