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칼레스 대장 - 니코스 카잔차키스전집 5
니코스 카잔치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83년 10월
평점 :
절판


크레타는 압제자에게 자신의 순결을 결코 허락하지 않은 땅이다.  그 점에 있어서 크레타인들은 자랑스러워 한다.  하지만 크레타에 살았던 철학자  에피메테우스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라는 명제를 들고 나와 크레타인을 약간 화나게 하기도 했다. 크레타인들은 지금도 에피메테우스가 거짓말을 했다고 믿고 있다.


카잔차키스의 소설에 나오는 크레타인들은 종교적 엄숙함이나 금욕적인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종교의 틀을 뛰어넘는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자유스러움이 더 종교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속의 삶을 사랑하는 크레타인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에 대해서도 용납하지 못한다. 이들에게 신은 "죄있는 자가 돌을 던지라"고 말하는 사랑의 신이 아니다. 오히려 성전에서 환전상을 향해 채찍을 휘두르는 분노의 신이다. 이들에게 압제자 터어키는 결코 화해할 수도 없고, 용서될 수도 없는 적이다. 


크레타는 섬이다. 이것은 언제나 홀로 서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터어키의 압제하에서 크레타에서 수많은 봉기가 일어났지만 결과는 언제나 철저한 탄압에 의한 마무리였다. 크레타인들은 이 처절한 패배의 한을 가슴깊이 삭이며 그 상처가 아물쯤이면 다시 일어서고, 무차별 진압이 반복되는 삶을 이어왔다. 크레타인들은 언제나 무릎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원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자유냐 혹은 죽음이냐의 극명한 대립 속에서 언제나 죽음쪽으로 자신의 무게추를 기울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크레타인들은 터어키의 압제에 봉기할 때 주님의 성전 앞에 모여 총을 쏘는 것을 신호로 투쟁을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외침을 하느님이 듣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1889년의 봉기는 비극으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당신 손의 화살입니다. 주님, 내가 썩지 않도록 나를 당기소서.


*나를 너무 세게 당기지 마소서. 주님, 나는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나를 힘껏 당겨주소서. 주님, 내가 부러진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세 가지 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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