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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 -상 ㅣ 범우고전선 23
아돌프 히틀러 지음, 서석연 옮김 / 범우사 / 199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파괴란 무엇인가'에서 네크로필리아를 아주 심도 깊게 다루고 있다. 네크로필리아란 그리스어 nekros에서 유래한다. 네크로스란 '시체'를 뜻하는데 이 말과 사랑을 뜻하는 필리아가 합성되어 '죽은 자에 대한 사랑'이란 뜻을 갖는다. 이 증세는 '사체기식증死體嗜食症necrophagia'과 '항문색정증肛門色情症'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이 증세가 있는 사람들은 프롬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죽어 있는것, 부패된 것, 썩은 냄새를 피우는 것, 병든 것에 열광적으로 끌리는 성향이라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생명이 있는 것을 생명이 없는 그 무엇인가로 바꿔 놓으려는 정열이며 파괴를 위해서 파괴하려는 정열이다. 순수하게 기계적으로 모든 것에 대해서 갖는 배타적 관심이다. 그것은 살아있는 조직을 찢어 발기는 정열이다'라고 하고 있다. 이 말은 마음 깊숙한 곳에 파괴적인 본능이 자리잡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투쟁은 히틀러가 뮌헨 비어홀 사건으로 란츠베르크 형무소에 복역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비서인 루돌프 헤스에게 기록하게 한 것을 책으로 낸 것으로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뒤에는 나치즘의 聖典으로 읽힌 책이다. 당시 서구에서는 이 책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지성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 속에서 히틀러가 주장하고 있는 극단적인 인종주의와 게르만 우월주의와 같은 사상에 동조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독일 국민들은 그의 노선을 지지했고 결국은 이차세계대전이란 미증유의 사건을 당하게 된다.
솔직히 이 책은 히틀러의 사고방식과 그의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어가는지를 우리에게 자기 스스로가 밝히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아우구스티누스나 톨스토이의 자서전처럼 자기 성찰과 반성, 참회의 결과로 이루어진 책이 아니다. 그것은 좌절한 혁명가(?)의 울분이 담겨있는 증오의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앞에서 프롬의 글을 인용한 것은 히틀러의 정신세계가 바로 그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살아있는 자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대중을 향해 연설할 때 언제나 적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그 적을 섬멸할 때 독일은 승리한다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함으로서 그 자신의 범죄에 독일국민 전체를 연루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히틀러는 미국의 유명한 만화가인 루브 골드버그Rube Goldburg처럼 기상천외한 발상을 즐긴 인물이었다. 히틀러는 군사적인 면에서 천재적인 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천재적인 발상을 언제나 인간의 생명을 가지고 시험하는 입장에 선 인물이었다. 그의 결정 한 마디와 지도에 표시된 연필선 하나로 인해 무수한 젊은 생명이 이 지상에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나의 투쟁은 정말 섬뜻한 내용을 아주 격렬한 언어로 담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격렬함은 문자라는 여과장치를 통해 아주 순화되어 있었다. 이것은 마치 마약 밀수상들이이 마약을 특수 약품에 희석시켜 다른 나라로 반입한 다음 그것을 다시 증류시켜 마약으로 만들어 파는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어떤 불순물이 섞여있다 하더라도 그 본질은 마약이기 때문이다. 나의 투쟁을 읽다보면 과연 현대 세계에서 30년대 독일에서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하지만 독재권력은 망각과 미망이란 토양속에서 언제든지 자랄 수 있다는 점 또한 유의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