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실크로드학
정수일 지음 / 창비 / 2001년 11월
평점 :
이 책을 보면 그 압도적인 부피에 놀라고 만다. 그리고 읽다보면 그 질량감에 또 한번 놀란다. 예순 일곱의 나이에 이런 책을 쓸 수 있다는 그 학문에 대한 정열이 놀랍고 부러울 뿐이다.
우리에게 씰크로드는 언제나 중국이란 오페라 글라스를 통해서 보던 몽환의 세계였다. 그 세계의 끝이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지 우리는 관심도 없었다. 다만 우리는 씰크로드의 주변부에서 우리의 역사를 꾸려왔다는 그 사실만이 강조되고 있었다. 세계사 속의 우리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아놀드 토인비의 대저인 '역사의 연구'에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 아는가? 서양인들의 눈에 아시아의 역사는 중국과 일본과 인도밖에 없는 것처럼 인식될 때 어떤 느낌을 받는가?
우리에게 실크로드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 전혀 없는가, 그렇다면 고선지와 혜초는 누구인가? 일본인들은 엔닌이란 중이 쓴 신변잡기와 같은 일기를 대대적으로 선전하여 그 일기책을 현장의 대당서역기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같은 위치에 올려 놓았다. 반면 우리의 왕오천축국전은 어디에 숨어있는가. 파미르고원蔥嶺의 패자였던 고선지는 어디에 있는가?
이 책에서 저자는 씰크로드학의 연성접근에 대한 편향성을 시정하기 위해 이 책을 기술했다고 말하고 있다. 연성접근이란 씰크로드의 교통사나 씰크로드 연변지역의 지역학.민족학, 대중매체를 통한 미지의 탐험과 같은 식의 접근이란 의미이다. 이런 방법으로는 씰크로드학을 체계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고 저자는 보고 있는 것이다. 즉 저자는 감성적인 접근을 배제하고 이성적인 접근을 위한 학문의 입문서로서 이 책을 기술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씰크로드학을 전공하거나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하나의 이정표로서 제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노 교수의 개인적 사정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이 우리 앞에 놓여졌다는 그 자체가 경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