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옹패설 나랏말쌈 16
이제현 지음 / 솔출판사 / 1997년 11월
평점 :
절판


역옹패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앞 부분은 제왕의 일화나 그 시대의 세태를 기록하였다면, 뒷 부분은 중국의 시와 우리의 시를 감상하도록 되어있다. 솔직히 앞 부분은 잘 읽히지만 시를 기록한 뒷 부분은 재미있게 읽기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漢詩의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무인정권 시기와 원의 간섭을 받는 시기에 살아가던 한 지식인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익재益齋-이제헌의 호-가 살아가던 시기는 격동의 시기였다. 그 격동의 시기에 지식인으로 살아간 익재의 행동 하나 하나는 앞으로 대두될 유학자들의 삶을 미리 보여준 것인지도 모른다. 익재는 고려가 비록 원의 지배를 받고 있지만 그것은 무력에 의한 것일뿐 원은 결코 고려를 마음으로 심복시키지 못했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익재의 마음만이 아니라 모든 고려사람들의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고려는 우리의 중세에 해당하는 시기임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있는 왕조이다. 고려시대 우리 민족은 역사상 가장 크게 중국을 압박했던 세 민족-거란, 여진, 몽골-과 차례로 격돌하며 동북아의 균형추 역할을 했던 왕조였다. 특히 몽골은 자신들의 배후에 위치한 고려를 30여년에 걸친 침공에서도 굴복시키지 못함으로서 몽골의 세계전략에 큰 차질을 가져오게 하였다. 쿠빌라이는 고려가 강화를 요청하기 위해 사신을 파견하자 옥좌에서 뛰어 내려와 사신을 맞이할 정도로 기뻐했다하니 고려의 저항이 얼마나 끈질겼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고려의 지식인으로 세상을 보는 눈은 어떠하였을까? 익재는 결코 회색인으로 삶을 살아가지는 않았다. 그의 행적을 보면 그는 영원한 고려인이었다. 원이 고려의 국호를 없애려 했을 때 익재는 글과 말로 이를 저지했으니, 사직을 보존한 점에서는 서희보다 더 뛰어나다 하겠다.

역옹패설은 국어시간이라든가 국사시간에 배운 그대로 우리나라 최초의 수필문학이다. 하지만 그 최초의 문장을 읽어서 자신의 뼈와 살과 피로 만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꾀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책 곳곳에 은근히 스며들어있는 고려인의 우월성은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특히 뒷 부분 시를 다루고 있는 곳에서는 중국의 시와 고려의 시를 비교하면서 우리의 실력도 결코 중국에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자랑하고 있다. 여기에서 정지상의 그 유명한 <送人>이란 시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부록으로 익재난고의 일부분이 번역되 있는 것은 역자의 보너스라고나 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