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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 - 흑산도의 물고기들
정약전 지음, 정문기 옮김 / 지식산업사 / 2002년 8월
평점 :
오래 전에 흑산도에 가본 적이 있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한없이 흘러가다 섬이 보이니 黑山이었다. 그러나 큰 배는 들어가지 못해 작은 배가 마중나와 우리들을 실어 날랐다.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에서 앞 뒤로 흔들리는 작은배의 요동이 무서워 배 가운데서 웅크리고 있던 생각이 난다. 여기서 보름 남짓 보내면서 아주 귀중한 경험을 했다. 80년대 초반의 흑산도는 아직 문화의 해택을 받기에는 먼 섬이었다. 저녁 8시 이후면 다방마다 돌아가던 자가발전기의 소리. 수출 100억불 달성을 일군 시대의 한켠에서는 아직도 제한송전이 실시되고 있었다. 하물며 정약전이 유배를 왔던 시기야 더 말해 무엇을 할 것인가? 섬도 아주 작아 반나절이면 섬을 한바퀴 일주할 수 있을 정도였다. 산 정상으로 올라가다 바다쪽으로 난 곳을 가리키며 누군가가 저기가 흑산도 무장간첩사건의 장소라고 하였다. 호기심으로 현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산으로 올라갔다. 정상에서 본 흑산도의 모습은 외로움과 고독에 함몰된 섬과 같았다. 하루 24시간 자신이 원하면 절대고독의 상태에 침잠할 수 있는 섬이 바로 흑산이었다.
80년대 대만에서 최인호 선생의 <별들의 고향>이란 책이 번역되었을 때 제목을 <星星之鄕>이라고 표기한 것을 보았다. 그들의 절묘한 번역에 무릎을 쳤다. 정말로 오묘한 한자의 묘미가 여기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을 두번 반복함으로서 복수의 뜻을 완벽하게 표현했을 뿐더러 반복으로 인한 어감도 살아있지 않은가. 정문기 선생이 번역한 이 책의 <玆> 역시 형태상으로 검을 玄의 복수형 글자처럼 보인다. 검은 것이 두번 겹치니 이는 칠흑과 같은 裏絹풔?것이다. 그러니 이 글자를 현으로 읽든 자로 읽든 뜻은 아주 검다는 의미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 책은 내가 <교과서에서 보고 들었던 책>을 찾아 떠나던 순례의 여정에서 만난 책이다.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부피가 의외로 작은 책이라서 무척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230쪽의 책에 번역문과 원문이 모두 들어있을 정도로 작은 책이었다. 그러나 한자의 포용성을 생각한다면 이것도 아주 많은 분량이 될 수 있으리라.
정약전 선생이 조사 분류한 어류는 인류(비늘이 있는 물고기), 무인류(비늘이 없는 물고기),게류(갑각류), 잡류로 린네의 동물 분류법과는 아주 상이하다. 그럼에도 그 당시 유배지에서 나름대로의 분류체계를 정하고 그 차림대로 물고기를 조사한 선생의 노력은 지극하기만 하다. 책 속의 물고기를 보다보면 우리 흑산도 주변에 이렇게 많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는가하는 놀라움 뿐이다. 정약전선생은 책의 自序에서 <....어보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마다 그 말이 다르므로 어느 말을 믿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섬 안에 昌大라는 사람이 있었다....성격이 조용하고 정밀하여, 대체로 초목과 어류 가운데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을 모두 세밀하게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여 그 성질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말은 믿을 만했다. 나는 드디어 이 분을 맞아 함께 물고기의 연구를 계속했다>고 적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는 蘭學-네덜란드의 학문을 연구하는 학문-을 연구하며 근대의 길로 들어가는 좌표를 설정했지만 우리는 실사구시. 이용후생이란 구호만으로 끝난 것이 무척 아쉬운 대목이라 하겠다. 일본은 그들이 원한 방향으로 국가를 이끌어 갈 수 있었지만 우리는 몇몇 선각자들의 외로운 외침으로 끝나고 말아 근대로 가는 길목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이들 실학자들의 생각과 사상을 담은 저서들은 말 그대로 기록이란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우리의 어류를 어보로 남기기 위해 노력한 정약전선생의 실학정신은 높이 평가되어야만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