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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트 영화, 그 미학과 이데올로기 ㅣ 한나래 시네마 7
곽한주 / 한나래 / 1995년 11월
평점 :
품절
컬트cult란 숭배, 예찬, 열과, 일시적 유행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 단어 속에 컬트의 모든것이 함축되어 있다. 90년대 우리의 영화는 컬트열풍에 휩싸였다. 컬트를 모르면 영화를 모르는 것처럼 이해되기도 했다. 하지만 솔직히 대다수의 사람들은 컬트를 <컬트 삼총사>이상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할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영화적인 코드로 컬트가 반복되면서 사람들은 <브레이드 런너>를 보고 <이레이저 헤드>를 보았다. 하지만 컬트영화가 되기위해서는 한가지 특이한 조건이 첨부되어야만 한다. 대중의 열광적인 환호보다는 소수의 마니아에게 어필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나 <007 시리즈>는 컬트영화로 인정되지 않는다. 컬트 영화의 추종자들은 <프리메이슨>이나 <헤르메스 비밀결사>와 같은 자기들 만의 유대감으로 뭉쳐있다. 이 감정은 자신들이 선택된 자, 혹은 축복받은 자로 여기는 문화적 우월감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컬트의 문화적 코드는 획일적인 사회가 붕괴되면서 다원화될 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사회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제2차세계대전은 사회의 변화에 큰 역할을 한 사건이었다. 남자를 대신하여 여성들이 전시경제를 이끌어갔고 이로 인해 전후 여성의 발언권이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흑인들이 전투병으로 참가하여 유럽에 갔을 때 그들은 유럽의 여성들이 미국보다 인종적 편협함이 적다는 사실에 놀랐다. 흑인들은 유럽에서 백인 여성들과 자유로운 성적 접촉을 갖게되고 이들이 귀국하면서 그동안 폐쇄적이었던 미국 흑인사회에 일대 경종을 울리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60년대 흑인들의 <공민권 운동>과 백인들의 <월남전 반대운동>이 결합하면서 대변혁을 일으키게 되었다.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격렬한 반항이 컬트의 싹을 자라게 하는 촉매가 되었다.
<레쎌웨픈1>에서 멜 깁슨과 대니 글로버가 경찰 지하 사격장에서 사격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멜 깁슨은 대니 글로버보다 훨씬 사격술이 뛰어난 경찰로 나온다. 하지만 군대에서 신물이 나게 총을 쏘아본 사람이라면 실제로는 대니 글로버가 멜 깁슨보다 사격을 더 잘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멜 깁슨은 방아쇠를 당기면서 자꾸 눈을 감는다. 눈을 감는다는 것은 최종적으로 목표물을 놓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대니 글로버는 시종일관 사격술이 굼뜬 역할을 하면서도 방아쇠가 격발되는 순간에도 눈을 똑바로 뜨고 있다. 컬트영화의 감각이란 이런것이 아닐까....
컬트 영화는 사회성과 정치성을 반영하기도 한다. 여기서 반영이란 말은 <찾아냄>이란 단어로 대치할 수도 있다. 컬트는 소수의 영화광들이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중이 열광할 필요는 없다. 그들을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간에 그것은 부질없는 것이다. 영화 속에 숨겨진 암호문을 찾는 것은 소수의 몫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수의 노력으로 그 영화의 대부분을 이해하고 그 테두리 속에 갇혀 버린다. 이런 점에서 컬트는 무한자유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테두리 속에 갇혀 일정한 형식에 의해 해석되어지는 것은 더 이상 컬트가 아니다. 그것은 컬트를 빙자한 유사제품일 뿐이다. 컬트는 대중매체를 필요로 하지않는다. 컬트는 비밀 결사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컬트는 결코 대중의 입맛에 딱들어맞는 음식은 아니다. 그 음식은 심각하게 불균형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어찌보면 컬트는 퓨젼음식과 유사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전통 음식주의자들에게도 패스트푸드 중독자에게도 기피대상이 된다. 누구도 선뜻 그 생경함에 입맛을 맞추려 하지 않는다. 그 음식이 아니더라도 먹을 것은 많기 때문이다.
컬트는 이러한 특성 때문에 언제서 소수의 대변자 역할을 해왔다. 이 소수는 주류를 바꿀 힘은 없다. 하지만 언제나 주류의 목구멍에 박힌 가시가 되어 주류의 안일함과 고정관념에 일침을 가한다. 에드우드 감독이 패티시즘이나 동성애를 영화로 표현했을 때 그것은 당시 대중들에게 혐오스런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적 관념은 현재는 아주 대범하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런 점만으로도 컬트는 문화적 고정관념의 산소호흡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