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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구원
자크 르 고프 지음 / 이학사 / 1998년 12월
평점 :
절판
<사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가는 것 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습니다>. 루가복음 18장 25절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이 말의 본질은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왜 어려운가? 돈이 많기 때문에? 부자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또 다른 질문이 파생된다. 돈이 많다면 죄가 많은 것인가? 아니면 죄가 많아야 돈이 많은 것인가? 그렇다면 가난한 자는 죄가 없는가? 가난한 자는 하느님 나라에 쉽게 갈 수 있는가? 이 말의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좌파, 우파, 중도파, 극좌파, 극우파, 중도 우파, 중도 좌파로 갈라질 수 있다. 자크 르 코프는 중세의 고리 대금업이 근대적인 은행업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추적해가며 왜 연옥이 탄생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중세시대 고리대금업을 할 수 있는 자는 유대인들 뿐이었다. 유대인들이 고리대금업을 할 때는 교회가 구원의 문제에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유대인은 교회의 밖에 있는 이방인이며 이교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2세기 유럽의 경제력이 급속하게 팽창하면서 유대인들이 주도하는 고리대금업만으로는 자금의 수요를 충당할 수 없게되자 기독교인 고리대금업자들이 출현하게 된다. 이렇게 되자 교회는 기독교인이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자 천국과 지옥의 사이에 연옥을 상정하고 그곳에 죄지은 기독교인들을 수용하였다. 연옥에 수용된 영혼들은 지상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그를 생각하며 기도를 드리고 미사를 드리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었다. 교회가 고리대금업을 금지한 실질적인 이유는 이자 때문이었다. 이자는 노동의 댓가가 아니라 착취의 개념으로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1492년 에스파냐에서 이슬람 세력이 마지막으로 축출된 뒤 유대인 추방이 뒤따르면서 유럽 각국도 유대인들을 대대적으로 추방하기 시작했다. 이때 서유럽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은 동유럽(폴란드와 러시아)으로 이동하여 그 지역을 활성화시키는데 일조하게 된다. 왜 유대인들이 추방되었을까? 이제 더 이상 기독교인들은 고리대금업이란 직업으로 인해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은 더 이상 필요없는 존재였다. 그 대신 새로운 신흥 고리대금업자들이 교회와 왕들의 비호를 받아가며 등장하게 된다. 돈과 구원의 세계는 신대륙이 발견되면서 더 이상 의미없는 화두가 되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