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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에프라임 키숀 지음, 반성완 옮김 / 디자인하우스 / 1996년 11월
평점 :
절판
작가 에프라임 키존은 우리에게 낮이 설지만 독일어권에서는 굉장히 인기가 좋은 대중적인 작가이다. 그의 이러한 대중적인 인기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79년에 한진출판사에서 <모세야, 석유가 안나오느냐>가 출판되었고, 이듬해에는 한겨레 출판사에서 <맙소사 우리가족>이란 제목으로 그의 풍자 작품집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잊혀진 작가가되는 듯 했는데 96년에 이 작가에 대한 바람이 불었는지 장문산과 디자인 하우스에서 책이 출판되었다. 장문산은 이전에 나온 책에 새로운 작품 몇 개를 집어넣어 번역한 것이었고, 디자인 하우스의 이 책 역시 제목 때문에 앞의 소설과 같은 범주의 책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몇 페이지를 읽다보니 이 책은 풍자이야기가 아니라 풍자 비평집임을 알았다. 진작에 이 작가가 대단히 넓은 범위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현대사의 굵직한 미술작품들을 대상으로 호불호를 떠나 난도질하는 솜씨는 가히 일품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작가는 요셉 보이스이다. 저자는 그의 작품 하나 하나를 섬세한 메스질로 난도질하고 있는데 저자는 보이스의 작품을 스노비즘snobism과 연결시켜 우리의 예술감각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얼치기예술(?)이 대중과 영합할 때 어떤 해악이 드러나는지를 이 책 곳곳에 삽입시켜 놓고, 그 대칭점에 샤갈, 루소, 뷔페, 모딜리아니, 델보, 피니, 와이어스, 푹스, 브라우어, 후터, 하우스너, 프록쉬와 같은 정통파의 거장에서부터 젊은 작가들을 배치해 놓고 대중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예술에 정진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역설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에프라임 키손은 가장 현대적인 예술행위인 <퍼포먼스>에 대하여 끊임없는 회의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키손에게 있어 의식이 없는 행위예술은 대중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보고있다. 그러면서 그의 시각에서 보는 행위예술가들의 모습을 거침없는 필체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의 이런 판단은 미술을 전문적으로 전공하는 사람들에게는 거북스러울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예술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 이 책은 예술적 행위와 상행위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키손은 예술이 상업적 행위로 변질되면서 대중과 가까워진 것이 아니라 대중을 더욱더 혼란 속에 몰아넣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사이비 예술은 정통예술의 가면을 쓰면서 더욱더 활개를 칠 수있다고 주장하는 그의 역설 아닌 역설은 의미심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鏡虛 禪師 惺牛>의 일화가 떠올랐다. 그분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선사께서는 옷을 벗은 알몸으로 무덤에서 울었다고 한다. 그러자 사람들이 물은즉, 어머니에게 난 모습 그대로로 어머님을 보내드린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그 심오함에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은 경허 선사의 도의 깊이를 알고 있기에 그의 이러한 행위를 인정한 것이다. 깊이가 없는 퍼포먼스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