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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용광로 - 유럽을 만든 이슬람 문명, 570~1215 ㅣ 신의 용광로 1
데이비드 리버링 루이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신의 용광로는 중세 이베리아 반도의 이야기이다. 이베리아 반도가 아랍의 침공으로 아랍화하면서 전개되는 7백년 간의 역사를 서술한 책이다. 사실 이베리아 반도에 대한 중세의 역사는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솔직히 무지하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스페인이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했고, 존재하고, 존재할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이런 우리의 생각을 이 책은 많은 부분에서 수정하고 있다.
이 책에서 크게 다루는 두 가지 사건은 푸아티에 전투와 론세스바예스의 이야기이다. 하나는 아랍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유럽으로 진출하려다 저지당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이 피레네를 넘어 이베리아로 진출하려다 패배한 사건이다. 이 두 사건이 이 책의 큰 흐름을 구성하고 있다. 영국의 역사가인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흥망사에서 푸아티에 전투를 유럽을 구한 엄청난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다. 기번은 만약 유럽이 아랍의 침공에 맞서 푸아티에에서 패배하였다면 유럽의 현재는 코란과 뮤에진의 기도알리는 소리로 뒤덮였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런 가정은 렌 데이턴이 히틀러가 영국 침공에 성공하였다면 어떠하였을까하는 가정에서 쓴 추리소설과 흡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칼 마르텔의 이베리아 침공에서 벌어진 비극을 극대화한 로랑의 노래에 나오는 론세스바예스 사건이다. 칼 마르텔이 푸아티에 승리 후에 이베리아 반도로 침공한 이 사건은 패배의 기록이었다. 그럼데도 유럽 사가들은 이 사건을 비극적 위대한 패배로 기록하였다. 사실 이 사건은 무모함과 무질서의 결과로 이루어진 패배였지만 이를 유럽인들은 극적인 사건으로 왜곡함으로서 현재의 유럽을 규정하는 사건으로 만들었다.
유럽인들은 푸아티에 전투를 유럽을 구한 전투로 묘사하고 론세스바예스의 패배를 장엄한 비극으로 설명한다. 여기에는 타협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무찌르고 살륙하고 승리하는 유럽만이 존재한다. 론세스바예스의 패배는 제국주의 시대의 카르툼의 고든인 것이다. 야만에 대적하는 문명의 숭고한 일시적 패배.
저자는 이 두 사건을 제시한 다음 용광로라는 주제로 접근한다. 과연 아랍과 유럽은 푸아티에의 승리과 론세스바예스의 승리를 어떻게 활용하였는가? 저자는 아주 간단하게 답하고 있다. 유럽은 극대화 했고, 아랍은 무시했다고.
유럽이 푸아티에의 전투를 극대화하면서 인종의 용광로인 유럽대륙을 기독교화 하는데 어떻게 했는지 묘사하고 있다. 무자비한 살륙과 복종만을 강요하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반면 론세스바예스의 승리로 유럽의 진출을 저지한 아랍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어떤 정책을 시행하였을까. 그것은 콘비벤시아convivencia-협동-였다. 이 책을 읽다보면 유럽보단 아랍이 자신들의 도가니에 모든 것을 융합시켰다는 것을 느낀다. 오히려 유럽은 이 시기에 프랑크의 칼 마르텔이 중부유럽의 이교도를 개종하던 야만적인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여 미래의 제국주의를 탄생시켰다는 점이다.
사실 아랍과 유럽의 대결에서 아랍의 콘비벤시아는 여러곳에서 드러난다. 살라딘의 예루살렘 점령후에 보여준 관용적인 태도는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을 때 보여준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사실 아랍의 콘비벤시아가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하고 제대로 뿌리를 내렸다면 현재의 유럽은 피레네와 라인강 사이에 존재하는 미미한 모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번역자가 말했듯이 다수의 지지를 받는 학설이 아니라 소수가 주장하는 새로운 학설이다. 그럼에도 그 호소력은 현재의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이 최고로 고조된 이 순간 큰 호소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