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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해 - 신화상징총서
에스터 하딩 지음, 김정란 옮김 / 문학동네 / 1996년 1월
평점 :
절판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신화상징총서의 제1권이다. 부제가 '달 신화와 여성의 신비'라고 되어있는 이 책을 읽다보면 조지프 캠벨의 서양신화의 여성판을 읽는 느낌이 든다. 우리들은 달과 태양을 이야기할 때 태양은 우성적이고 달은 열성적이라는 식으로 기억한다. 태양이 밝음이고 달은 어둠이라는 것은 하얀색은 선, 검은 색은 악으로 보는 이분법과 조금도 다름이 아니다. 이렇게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보면서 상대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은 일종의 훈련에 의한 것이다. 사회성이라는 명목 아래 남과 여의 차별성만을 강조함으로서 보편적인 인간관계를 상실하고 만 것이다. 이 결과 남과 여의 관계는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이해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저자인 하딩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화속의 여신과 남신의 관계를 통해 볼 때 남신은 여신으로부터 파생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것은 여성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생식능력과 결부해보면 아주 지당한 것일지라도 훈련된 이분법적 시각으로 볼 때는 불합리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하딩은 남신가 여신은 구분이 아니라 역할의 다름을 표시한 이름일 뿐이란 점 역시 지적하고 있다. 하딩의 이 말은 현대의 가족관계속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언급될 수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는 가족의 구성관계 속에서 가족을 위한 역할의 다른 이름일 뿐 그것이 남자와 여자의 존재를 고정시키는 단어가 아니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우리들은 여성성 혹은 남성성을 이야기할 때 어떤 선입견이 들어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신화의 세계에서 여성성이나 남성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아킬레우스도 여장을 하고 시녀들 사이에서 숨어있었으며, 아테나 여신은 투구와 방패를 들고 전투를 벌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칼리 여신은 피를 부르는 속성이 있지만 시바는 창조의 역할을 한다. 이렇게 하나의 신 속에도 여성성과 남성성이 교차되어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신들이 성에 의한 고정적 관념이 아니라 역할에 따른 가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하딩은 처녀와 부인의 관계 또한 설명하고 있다. 즉 하딩은 진정한 여성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 속에 숨어있는 힘을 자각한다는 것이라고 보고있다. 내면에 있는 힘-그것은 여성성이든 남성성이든 사랑의 개념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사랑이란 여성이 한 남성에게 집착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즉 사랑은 내면 속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고 그것은 자신이 자신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각이 가장 완벽할때 여성은 누구나 성모마리아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하딩은 처녀란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여기서 처녀란 처녀막의 유무를 떠나 자신 안에 있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독립적인 방법으로 자기 안에 통합해 넣을 줄 아는 독립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아테네 여신이 처녀의 이미지를 고수하는 것은 그녀가 순결함이란 의미만으로 취득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그녀의 존재성에 의거한 처녀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신화적인 발상은 그리스도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초세기 교부들은 마리아의 처녀 임신은 의심하지 않았지만 출산을 한 뒤의 처녀성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였던 것이다. 즉 임신으로 인해 마리아의 처녀막이 손샹되었다면 그녀는 더 이상 처녀가 아니지 않는가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는 과정은 처녀라는 개념이 육체의 훼손이 아니라 신의 강림에 긍정적인 대답을 하고 자신의 사명을 자각하고 비개인적인 에로스의 힘을 자각한다는 의미에서 마리아는 영원한 처녀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막달라 마리아 역시 회개하고 과거를 씻어버리고 자신의 의미를 깨닫고 신의 사랑을 자각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을 그 순간 처녀인 것이다.
이 책은 달과 여성과 신화의 엮음을 아주 차분하고 지적으로 그리고 알기 쉽게 풀어나간 책이다. 이 책은 신화의 열기 속에서 그리스.로마신화의 아류로 나온 책이 아니다. 정말로 신화를 이해하고 알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에게 생소한 중동지역의 신화와 신,여신들의 이름이 생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지역의 신화가 그리스,로마신화의 원형이란 사실을 알게되면 신의 이름이 그리 생소하게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왜 신화속에서 주인공은 남성적인 신인가에 의문을 가진 분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 보기를 바란다. 아울러 로즈마리 류터의 <새 여성,새 세계>란 책도 함께 읽어보기를..... 신화속의 여성의 역할이 어떻게 과소평가되어 왔는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