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앉아서 세계를 발견한 남자 - 제바스티안 뮌스터의 <코스모그라피아>
귄터 베셀 지음, 배진아 옮김 / 서해문집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칸트는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세상을 관철하였다. 그는 이성,감성,오성으로 이 세상을 분석하고 해석하고 파악하였다. 반면에 이 책의 주인공인 제바스티안 뮨스터는 바젤에서 이 지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표현하려 노력하였다. 그는 이 세상을 철환하지도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거주지에서 이 세상을 묘사하고 그리는데 일생을 바쳤다. 

그가 이렇게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입장에서 볼 때 불확실하고 유치하기까지 한 견문록과 지도 그리고 그림이 가득찬 그의 지리 백과사전은 헛된 공로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그가 이 작업에 일생을 바친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제바스티안 뮨스터가 살아간 세계는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였다. 그동안 사람들이 믿어왔던 진리가 새로운 발견으로 수정되어야만 했던 시기이다. 그리고 그 진리를 지탱해 왔던 종교마저도 분열을 하여 사람들에게 절대적 진리에 대한 회의를 가지게끔하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런 시기에 제바스티안 뮨스터는 모든 기록을 모으고 그것을 기록하고 그림을 그렸다.  

이 방대한 작업은 그 시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하는 하나의 기록이 되었다. 물론 그 속에 기록된 것들의 진실성은 예외로 하고 말이다. 하지만 제바스티안 뮨스터의 작업이 현재의 우리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앞으로 발견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무지막지한 호기심이다. 자신들 이외의 땅에 사는 기묘한 종족들에 대한 현대의 시각이 냉소적인 것처럼 아마 우리의 후손들은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외계인에 대한 영화나 기록을 몇 백년 후에 본다면 지금의 우리처럼 냉소적인 시선으로 이 시대를 평가할지 모른다. 우리는 중세의 시대가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런 기록을 보는 순간 무지와 몽매라는 단어를 앞에 내세우게 된다. "어떻게 그 시대는 이런 터무니없는 사실을 진리 혹은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었을까?" 이런 우리의 질문은 우리 후손들에게도 그대로 유효할지도 모른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몇백년 혹은 몇천년 후에 우주인과 조우한 우리의 후손들은 지금 묘사된 우주인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이런 터무니없는 기록 혹은 모습을 믿을 수 있었을까?"라는 냉소적인 말을 내뱉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제바스티안 뮨스터의 시대가 보여준 왕성한 호기심과 탐구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두 바퀴의 추진체가 없었다면 우리들은 지금의 모습까지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 호기심과 탐구심이라는 거인을 잘 이용한 난쟁이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의 이 상태로 도달하기까지 우리는 호기심과 탐구심이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고 좀더 멀리 볼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