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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 - 고대 델피의 숨겨진 예언과 사라져 버린 비밀들
윌리엄 브로드 지음, 김혜원 옮김 / 가인비엘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도도나에는 제우스에게 바쳐진 한 그루의 참나무가 있었으니, 이 참나무는 여사제들을 통해 신탁을 내렸네. 조언을 구하러 온 자가 참나무에 다가서면 일순간 나무가 움직이고, 곧이어 여인들이 이렇게 말한다. '제우스 신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도다.' 이 여사제들은 비들기를 의미하는 펠레이아데스 혹은 페리스테레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이들은 트로이인들로서 최고 연장자는 앞선 영혼을 뜻하는 프로메네이아, 다음은 칭송을 받은 미덕을 의미하는 티마리테, 최연소자는 인간들의 승리자를 뜻하는 니칸드라로 각각 불렸다. 그런데 펠레이아데스는 어떤 방식으로 나뭇잎이 사각거리며 내는 소리들을 해독할 수 있었을까? 플라톤에 따르면, 도도나의 여자 예언자들은 델포이의 퓌티아(이들은 월계관을 쓰고 월계수로 장식된 삼각 의자에 앉아 신탁을 내렸다)처럼 예언을 내렸던 것 같다. 달리 말하자면 그들은 일종의 엑스터시에 빠진 상태에서 신으로부터의 메시지를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자크 브로스의 "나무의 신화" 중에서-
이 책은 신탁의 엑스터시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우리들은 형이상학적 예언의 실체를 과학적인 눈으로 파악할 수 있을까? 플라톤이 증언한 대로 델피의 퓌티아들은 환각의 상태에서 예언을 하였다. 그리고 플라톤은 델피의 무녀가 앉아있는 삼각의자 밑으로 갈라진 틈이 있어 그곳으로부터 신의 영기가 나와 여기에 취한 무녀가 예언을 쏟아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실제로 증언할 증거가 고고학적으로 발견되지 못했기 때문에 현대의 우리들은 델피의 신탁에 의혹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많은 영화나 소설 속에서 델피의 무녀 혹은 이와 비슷한 내용을 표현할 때믄 형이상학적 접근보다는 형이하학적인 표현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이 결과 델피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의 신탁에 성적요소가 강하게 표현되었다(최근의 것으로는 '300'이란 영화의 관능적이고 자극적인 신탁을 들 수 있겠다). 하지만 고대의 기록을 보면 그러한 몽환적이고 관능적인 예언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현대의 우리가 고대의 신탁을 성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델피의 고대 증언이 근대의 고고학적 발굴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델피의 경우 고고학적 발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모습을 그려내지 못했던 것은 그리스가 히말라야에서 시작하여 코카사스지역을 지나 소아시아(터키지역)와 그리스를 지나 알프스로 이어지는 지진대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잦은 지각변동이 있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그리스에서의 고고학은 지질학과 병행하여 발굴이 이루어져야만 정확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1892년 프랑스팀이 델피를 발굴조사하였음에도 고대의 기록과 일치하는 유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동안 잦은 지진으로 인해 델피지역의 단층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소한 실수가 바로 잡히기까지 델피의 신탁은 일종의 야바위로까지 비하되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 한 지질학자의 우연에 의해 델피의 모습이 바로 잡히게 된다.
고고학에 지질학이 가세함으로서 델피의 모습은 바로잡히게 된다. 고대인들이 묘사한 델피의 모습-퓌티아가 삼발이 의자에 앉아있고 그 삼발이 밑 갈라진 틈으로 흘러나오는 연기-이 사실이었음을 증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각이 갈라진 틈으로 흘러나온 연기도 에틸렌일 것으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즉 무녀는 석회암 지대의 갈라진 단층 사이로 흘러나온 에틸렌에 취해 무아지경 속에서 예언을 내린 것이다. 물론 이 예언을 해석하는 임무는 신전의 사제들이 하였다. 물론 이 해석은 후대로 갈수록 단순해지며 모호한 경우가 많았지만 델피신전에 받쳐진 무수한 감사의 팻말과 봉헌물의 기록은 예언이 단순함을 넘어 그리스 전체의 운명까지도 결정하였었다(스파르타의 리쿠르구스법과 아테네의 솔론법).
사실 '300'에 나오는 레오니다스의 신탁은 델피에서 "황소와 사자들의 힘으로는 적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아니, 적은 그 도시 또는 왕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놓을 때 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는 경고를 받았다. 스파르타인들은 이 불길한 예언에 고민해야만 했다. 도시를 잃어버리는 것이 나을 까 아니면 왕을 잃어버리는 것이 나을까? 이 예언대로 사자(레오니다스)는 쓰러졌지만 스파르타는 구원을 받았다.
이 책은 과학의 잣대로 모든 것을 바라볼 때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도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과학으로 시공간의 무한함을 모두다 밝혀낼 수는 없다. 과학은 종교가 아니다. 과학은 다만 종교의 길을 밝혀주는 무수한 재료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델피에서 과학은 갈라진 틈에서 흘러나온 증기라는 단어를 밝혀내지 못하자 그 수천년의 역사를 단순한 사기 혹은 희극으로 격하시켰었다. 하지만 그 실체가 드러나자 과학은 한발 뒤로 물러나 더 정확한 과학적 증거가 나올 때까지 자신의 판단을 유보한다.
하지만 델피의 퓌티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들은 나의 비밀 가운데 하나를 발견했지만 나는 여전히 다른 비밀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