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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일본기 1 ㅣ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클래식 5
스가노노마미치 외 엮음, 이근우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倭의 고대사 가운데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氏姓-우지/카바네라고 부른다-에 관한 것이이 아닐까. 그 긴 이름 속에서 어떤 것이 진짜 이름인지 판단하기 힘들다. 이런 고역은 속일본기1을 읽다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길고 지루한 이름과 관직명의 덤불 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읽고 있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왜 고대의 일본인들은 현대인이 볼 때 무의미하다싶은 이런 기록을 끊임없이 서술하며 기록하였을까?
일본 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氏-우지-는 거주지역 혹은 직능을 표시하는 씨족명을 얻은 일족을 가리키고, 姓-카바네-은 氏의 수장에게 주어지는 세습적인 칭호라고 한다. 즉 氏는 공통의 세습적 氏를 가진 가구들의 결합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집단 안에 세습칭호인 姓을 가진 한개 이상의 혈통이 존재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즉 氏는 집단의 구성원으로 姓은 지배자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이렇게 볼 때 일본의 氏姓제도는 정치적 필요성에 의한 성격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즉 한 집단 혹은 여러집단을 하나로 묶는 끈으로서의 역할이 바로 氏姓이었던 것이다. 한 예로 일본의 氏는 혈족이 아닌 자를 양자로 삼는 전통이 강한데 이것은 동질적인 혈족은 아니지만 같은 氏를 조직함으로서 소규모 공동체의 수장 및 지도자들은 그들의 지배아래로 흡수하려 시도하였다. 이런 일본의 관습은 혈통,부계혈통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곤란하지만 이들에게 氏姓의 울타리 안에서 상하복종의 관계가 형성됨으로 혈통보다는 능력에 의한 양자제도가 자연스럽게 고착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속일본기의 기록은 천황이라는 단일 지도국가로 향해가는 일본의 새로운 조직도와 같은 것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천황-이들은 姓이 없다. 오직 이름만 있을 뿐이다-을 중심으로 일본은 하나의 거대한 氏姓국가로 재편하였던 것이다. 즉 氏라는 거대한 울타리-혹자는 우지의 어원을 한국어 울(울타리)로 보기도 한다-안에 조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고대의 일본부터 현재까지 내려온 일본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왜 일본인들은 천황제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왜 천황이라는 단일지배체제 속에 아무 불만없이 편입되려 하였을까? 그것은 일본이라는 하나의 국가-솔직히 국가라기 보다는 천황을 가부장으로 하는 하나의 집단-속에 역할을 분담함으로써 자신의 위치가 고정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속일본기1의 세계는 이러한 세계가 시작되는 고대 일본의 모습을 지루하게 혹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보충>이런 氏의 예는 백제에서도 볼 수 있다. 한 예로 흑치상지를 들 수 있다. 흑치氏는 원래는 백제 왕족인 扶餘성姓을 가진 집단이었는데, 그 조상이 흑치지방의 영지를 봉토로 받았기에 자손들이 흑치라는 씨로 불리우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중국 낙양에서 발견된 흑치상지의 비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즉 일본의 고대사에 있어서 백제의 역할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백제는 아마도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고대사 국가 가운데 건국신화가 없는 유일한 경우가 아닐까. 즉 백제는 시작부터 중국이나 주변의 국가들로부터 문물을 전수받아 그것을 자신들의 통치에 작용시켰던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원동력 덕분에 처음부터 자신들의 노하우를 타국에 전수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