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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의 뿌리를 찾아서
조세프 R. 스트레이어 지음, 김동순 옮김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8년 11월
평점 :
서양의 중세는 복합적인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중세의 밑그림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교회는 늘 지상에 하느님의 나라-왕국이 아니다-를 건설하려 하였다. 물론 이 나라의 주도권은 성직자들이 갖고 있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의 명제-지상에 건설된 하느님의 나라와 종말론적 미래-가 완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중세는 이렇게 거창하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성직자들은 중세를 완벽한 종교의 세계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들은 로마의 붕괴로 생겨난 공백을 종교의 힘으로 보전하였다. 주교좌를 중심으로한 신의 도시는 로마의 전통을 보전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로마 역시 그 넓은 제국을 지배하는데 도시-시비타스-중심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결국 중세의 도시는 이런 성직자들의 바램으로 성당을 중심으로 광장이 있고 광장의 좌우에 행정과 입법 그리고 사법을 상징하는 건물이 들어서고 그 외곽으로 시장이 설치되었다. 이런 구조는 어떻게 보면 교회, 정부, 시민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삼위일체의 지상 구현이었다.하지만 이들에게는 관용과 자비가 없었다. 이교에 대한 무자비한 박해는 언제나 하느님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그 정당성은 타자가 아니라 자신에게 적용될 때 언제나 부조화를 불러일으켰다.
반면에 세속의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사고를 발전시켰다. 이들은 바이킹으로 대표되는 야만족의 침입을 방어하고자 성채-부르구스-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근거지를 건설하였다. 성채로 둘러싼 자신들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장원을 건설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성채에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성당과 지배체제를 건설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들은 중세를 특징짓는 장원체제를 형성해 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조직을 경영할 머리가 없었다. 이들은 단순하고 잔인했다. 그 잔인성은 종교의 이름으로 표출되는 聖戰에서 언제나 정당성을 획득하였다. 결국 이들은 타자에 대한 잔혹함은 언제나 교회의 이름으로 상쇄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일까, 이들에게 신앙심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종교를 통해 얻은 정당성과 합법성만이 중요시될 뿐이었다.
이렇게 볼 때 중세는 주교좌의 시비타스와 영주들의 부르구스의 경쟁이었다고 볼 수 있지도 않을까? 이 다르면서도 같은 同腹異父의 체제는 중세를 성과 속의 대결로 몰아갔다. 주교들이 지배하는 도시는 성스러움이 지배했지만 무력이 없었다. 반면 영주들이 지배한 도시는 무력은 있었지만 교회로 대표되는 성스러움이 없었다. 성스러움은 그것을 유지하고 전파할 수 있는 힘을 원하였고, 세속의 권력은 힘은 있었지만 그것을 정당화할 성스러움을 필요로 하였다. 이 두 이질적인 요소가 어떻게 합쳐졌을까? 중세 기간 내내 이 둘은 결코 통합되지 않았다. 마지못해 타협은 되었을지 몰라도 어느 한 쪽이 굴복하여 한 쪽으로 통합되었던 적은 결코 없었다. 결국 아무도 승리하지 못하였음에도 세속의 권력과 교회는 자신들이 중세의 지배자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세속의 권력과 교회의 권력이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자신들이 세웠던 시비타스와 부르구스 내부의 변화였다. 이 도시들에서 서서히 힘을 비축하기 시작한 시민계급이 새롭게 등장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세속과 교회의 사고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계층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정당화해줄 종교에 기댈 신분도 없었지만 그들 자신이 성스러운 신분에 편입될 의향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직 자신들의 노력으로 부를 축적하여 자신들의 위치를 만들어간 새로운 계급이었다. 성직자-귀족-농민으로 구성된 중세의 신분 질서에 이들이 위치할 공간은 없었다. 이들은 성직자도 귀족도 아니었지만 농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의 뿌리는 세속권력과 교회권력이 자리를 잡고 있던 그곳이었다. 그러기에 이들 신흥계급은 어떻게 보면 세속적이었지만 다른 편의 그림자는 성스러운 교회에 닿아있었다. 이들은 부를 추구했지만 한편으로는 내세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교회의 위선에 경멸적인 시선을 보냈고 세속의 권력을 우습게 알았다. 이런 이들의 사고와 시선은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들 새로운 계급은 자신들의 근원을 고대에서 찾으려 노력하였다. 그것은 현재의 교회 체제의 이데올로기에서는 자신들을 정당화할 어떤 근거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부에 대한 편견과 엄격한 위계질서는 새로운 계급이 성장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고대의 그리스-로마의 시대를 하나의 전거로 삼아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창출하였다. 구원은 믿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믿음의 깊이는 기도의 힘이 아니라 근면과 성실을 통해 쌓아올리는 부의 크기로 측정되었다. 믿음의 느린 시간은 이들에게 죄악이었다. 이들에게 시간은 돈이었으며 신앙이었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죄악이었던 것이다.
이런 사고는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기존의 신학이 한 걸음 더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재발견하면서 가능하였다. 교회는 이들의 사상을 이단시하면서도 자신들의 체제에 맞게 재단하였다. 교회는 신 중심의 창조에서 과감하게 이 지상의 창조물을 통해 신의 위대함을 증명하려 하였다. 단일성에서 다양성으로 퍼져나간 창조사상을 다양함에서 단일함으로 시각을 바꾸었던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교회는 변화의 조짐이 퍼져나가던 시대에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유럽의 뿌리에는 세련과 야만이 혼재해 있음을 알게된다. 그리스-로마로 대표되는 문명의 뒤 편에 숨어있는 잔혹함이나 불관용은 게르만으로 표현되는 야만성에서 언뜻 언뜻 드러나는 관용과 포용을 보노라면 뿌리의 근원이란 큰 테두리에서보다는 그 깊은 곳의 본성을 살펴봐야만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