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자오선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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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뜨거워 하얀 태양, 버석거리다 못해 조그만 충격에도 부서질 것만 같은 뜨거운 대지. 이 세계는 멜빌의 바다나 포크너의 요크나파타파와는 또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세계들에서 인간은 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라는 심각한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그 악은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원초적인 것이다. 그러기에 그 악은 우리를 번민하게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악에 물들게한다. 원죄 이전의 악이기에 죄의식이 없는 것이니까.. 

머리가죽사냥꾼의 세계는 힘의 세계이다. 그 힘은 에이헙이나 콤프슨 가문이 지배하는 영역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절대적이며 숭고하기까지한 그 힘은 사악하기조차 하다. 그것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죽음뿐일까? 과연 죽음만이 그 사악함 혹은 거대한 힘을 잠재울 수 있을까. 판사로 대표되는 집단에서는 개인은 없다. 오직 판사로 대표되는 집단의 우두머리만이 있을 뿐이다. 이 집단에는 긴장도 기쁨도 고통도 슬픔도 없다. 오직 원시적 본능에 충실한 짐승들만이 존재한다. 그들은 배고픈 짐승이 먹이감을 사냥하듯 돈을 위해 머리가죽을 수집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우연이라기 보다는 필연이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달려가는 집단에게 있어 우연이란 없다. 에이헙의 배가 흰고래를 쫒듯 판사의 집단은 머리가죽을 쫒는다, 

집단은 독수리의 눈을 가지고 표범을 발을 가진 지도자를 원한다. 집단은 멀리보고 빨리 달리는 용맹함을 추종하며 자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벌거벗고 춤을 추는 의식은 집단최면의 또 다른 상징이다. 무아경 속에서 자신을 잊고 몽환속에 빠져들어가는 이들의 정신세계는 구원을 기다리는 절실함이 담겨있는지도 모를일이다. 

소년은 원시적 본능이 충실한 세계 속에서 성장한다. 그가 본 세계는 불행하게도 자신이 태어난 세계와 그리 멀지 않다. 항상 폭력이 존재했고, 죽음이 가까이 있는 곳. 바로 사막이 그 접점이다. 사막은 문명과 원초적 본능을 갈라주는 경계선이다. 사막은 소년이 진정한 서부인(?)으로 자라기 위한 시험장이며 단련장이다. 소년은 네미 호수의 사제처럼 상대를 죽여야만 혹은 상대에게 죽어야만 진정한 자유인으로 태어날 수 있는것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용서받고 용서할 수 있을까? 아마도 판사는 벌거벗고 가죽장화만 신은 모습으로 우리를 노려보며 "믿는 자에게 만!"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핏빛 자오선의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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