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의 거짓말
제수알도 부팔리노 지음, 이승수 옮김 / 이레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본 영화가 한 편 생각난다. 자살 로봇이 있는데 그는 인간과 똑같다는 설정이었다. 그는 인류파멸이란 임무를 띠고 인간 세계에 파견되지만 기폭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 로봇은 인간 세계 속에서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경험을 하게된다. 그러다 결국 그 로봇은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을 생각한다. "내가 누구지?" 바로 이 핵심적인 문장이 기폭제였던 것이다. 기계가 사유한다는 것은 결국 작동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 아닌가?

그날 밤의 거짓말을 읽으면서 생각난 것은 바로 이 상황이었다. 감옥에 갇혀 사형선고를 받는 죄수들은 거짓과 진실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보고 있느냐가 핵심이 되는 것이다. 즉 자신이 생각하면 할수록 진실에 가까이 가게되기에 결국 권력자가 원하는 비밀을 고백하게 된다. 반대로 자신의 현실을 직시한다면 진실을 말해도 혹은 거짓을 말해도 죽는다는 것을 알게된다. 자신이 말하는 것이 진실이라면 배신을 하게되는 상황이고 자신이 실토하는 것이 거짓이라면 죽게되는 상황이라면 호랑이가 있을지도 모르는 문을 여는 것과 같은 것이리라.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다보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약점을 미화한다. 월척을 너무나 꿈꾼 나머지 길이가 한자이고 두께가 한자인 뱀장어를 잡았다고 자랑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은 남자들이 자신의 관심 대상인 여성에 대한 오해일 것이다. 술좌석에서 남성들은 그 한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생각해보자(물론 여성의 경우도 같다고 할 수 있다). 다섯의 사내가 있다면 그 여성의 다섯가지 면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것은 순전히 자신의 주관적인 관심에 의해서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야기가 진행되다보면 그 여성의 객관적인 면이 어렴풋이 떠오른다는 점이다. 주관적인 칼날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 진실 혹은 심줄이 슬쩍 드러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이야기가 끝난다면 괜찮다. 하지만 여기서 더 앞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언어의 폭력이며 자신의 아집이 될 뿐이다. 그리고 진실의 히미한 그림자마저 사라지고 하나의 환상이 자리를 잡게된다. 바로 그 절정이 피천득 선생의 아사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날 밤의 거짓말 역시 이와 유사한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芥川의 羅生門을 이야기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인간의 진실성이 시험대에 올라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이 세상의 다른 동물과는 달리 후회를 한다는 점이다. 이 색다른 점이 인간의 지적 능력 혹은 윤리성을 진보시키기도 혹은 퇴보시키기도 한다. 베드로는 닭이 세번 울기 전에 자신의 배반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유다 역시 예수의 죽음에 자신의 배반을 후회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미래는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다. 하나는 천국의 열쇠를 관장하는 위치에 섰지만 다른 하나는 지옥의 불 속으로 떨어졌다.

"그날 밤"에 어떤 거짓말이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날 밤의 "거짓말"이란 점이다. 그것은 살기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 다른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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