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의 모자 -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본 17세기 동서문명교류사
티모시 브룩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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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베르메르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던 것은 70년대 중반이었다. 그것도 한국의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본의 동경대학 교양강좌라는 번역물을 통해서였다. 이때 베르메르-당시에는 페르메르라고 번역했다-의 그림은 철학적인 접근으로 소개되었다. 사실 그 당시에 베르메르라는 화가와 그 그림의 배경이 되는 델푸트라는 도시는 생소함이 가미된 무관심의 도시였다. 베르메르가 기억되는 것은 그림에 드리워진 철학적 깊이감-이것도 솔직이 작가의 주관적인 것이었을 것이다- 때문이었다.

사실 베르메르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간단히 생각해 볼 화가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베르메르가 활동할 당시 네덜란드는 페르낭 브로델이 말한 것처럼 세계의 도시였다. 즉 베르메르는 세계인의 관점에서 그의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그가 무엇을 그렸건 간에 그것은 당시 최고의 무대에서 살았던 화가의 느낌이었다. 그는 이 도시를 통해 들어온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그것을 자신의 화폭에 표현하였다. 그는 결코 그 자신이 자신이 살고 있던 세계와 당시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세계를 연결하고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베르메르의 세계는 정말로 신기하다. 그의 그림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같은 장소-자신이 살고 있던 2층 방-에서 같은 모델-자신의 부인인 카타리나 볼네스-을 가지고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표현하였다. 실제로 이 책에 나와있는 '장교와 웃는 소녀'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젊은 여인' '지리학자' '저울을 든 여인'의 배경을 조금만 유심히 살펴본다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주 작은 세상에서 저 넓은 세계를 바라본 한 사람의 천재적인 발상 혹은 능력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의 미래를 향한 혜안?! 아닐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고, 의도하지 않았던 역사가 아니었을까? 베르메르의 세계는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나비의 날개짓에 포함된 세계인의 초기 모습이 아니었을까? 베르메르는 느끼지 못했지만 이미 그 당시 네덜란드, 아니 델프트의 세계는 세계 경제의 한 축이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페루와 멕시코의 은이 스페인으로 흘러오고 다시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프랑스로 흘러간 다음 중국으로 흘러가는 무역의 과정을 통해 베르메르의 세계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세계화라는 범주 속으로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의 흐름이 오는 순간 왜 일본이 30여년 전에 이 화가를 깊이 생각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세계화는 90년대 후반에 말로만 시작되었지만, 일본의 세계화는 70년대에 이미 철학적 접근으로 구체화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자신들이 최고의 대학이라고 생각하는 동경대학의 신입생들을 대상을 교양강좌를 실시하면서 베르메르의 조그만 세계와 일본, 그리고 그 베르메르의 세계가 동경했던 혹은 알지 못했지만 묘사했던 세계화의 연결점을 일본이라는 조그만 나라와 연결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으면서 자꾸 뒤켠으로 어른 거린 불편함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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