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왜군의 백제파병 이야기 - 白村江戰鬪
도야마 미쓰오 지음, 이성범 옮김 / 제이앤씨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를 살펴볼 때는 아주 신중해야만 한다. 한쪽에 대한 일방적인 시각에서 고대사를 보다 보면 두 나라 사이의 심도있고 미묘한 사실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언어로 본 일본 고대사에 일가견이 있는 이영희 교수의 저작을 읽어보면 온통 일본어는 고대 한국어의 영향 속에서 발전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관점 속에는 일본이 대륙뿐만 아니라 남방 해양세력을 통해서도 문화를 전수받았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잉글랜드의 영어가 오직 프랑스어의 영향만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잉글랜드의 영어는 켈트어, 라틴어, 불어, 게일어, 웨일즈어 등  많은 언어의 영향을 받았다. 다만 프랑스어가 그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언어 역시 고대 한국어의 일방적인 영향보다는 일정한 부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고대 역사도 이런 입장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일방적이라는 타협할 수 없는 단어보다는 상호적이며 보편적인 관계 속에서 냉철하게 한일 고대사를 살펴봐야만 한다. 백제의 분국이 일본이라는 학설은 임나일본부설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일본의 국수적인 입장을 한국의 국수적인 입장으로 치환했을 뿐이다. 이런 강경론적인 역사관을 대다수의 한일 국민들은 수긍할 수 있을까? 역사란 감정의 학문이 아니다. 아주 피곤하고 느린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땅을 한자 파서 헤치고 털고 쓸어내면 겨우 한 세대의 히미한 흔적을 살펴볼 수 있을 뿐이다. 몇 백년 몇 천년의 깊이를 알고자 한다면 엄청난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전제를 책 밑바닥에 깔고 시작한다. 그래서 한일고대사 가운데 가장 극적인 장면이 오히려 차분하게 느껴진다. 백촌강 전투 혹은 백강 전투는 신라, 백제, 당, 일본이 어울어져 치열하게 싸웠던 가장 큰 전쟁이었다. 이 전투로 6백여년을 지속해오던 한 왕조는 몰락하였고, 다른 왕조는 1천년을 지속할 원동력을 얻었으며, 다른 국가는 자신들만의 새로운 왕조를 수립할 수 있었다. 이렇게 엄청난 변화를 초래한 백촌강 전투를 한 일의 입장에서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 책은 일본의 입장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면서 그들이 이 전쟁을 어떻게 역사 속에 투영시키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사실 일본 사학계는 일본서기나 고사기를 토대로 여기에 신당서 구당성와 같은 중국 사서를 접목시켜 고대사를 구성하는 것이 한계에 달하고 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다. 그럼에도 그 한계를 정직하게 실토할 수 없는 것은 고고학의 왜곡에서처럼 자국 중심적 사관의 기풍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일본의 고대사 저서를 읽어보면 정신병 상담의의 심리분석기록과 유사한 느낌을 저버릴 수 없다. 어느 짧은 한 귀절을 통해 모든 상황을 유추하고 그 유추를 토대로 자신들이 원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역사적 사실을 결론짓는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검증으로 중국의 사서를 꼭 인용한다. 이러한 기술의 장점은 역사를 보는 관점을 넓게 확산시킨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고무적인 것이지만 자의적 심리적 해석으로 인한 앞뒤 모순의 관계가 명확하게 해소되지 않고, 이로 인한 역사의 왜곡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이러한 일본 사학계의 약점과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서의 아주 짧은 백촌강 전투에 대한 분석과 그로인한 일본의 탄생에 촛점을 맞춘 이 책은 일본의 역사학계가 동아시아의 고대사 관계 속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잘 드러난다. 저자의 말대로 당시 왜는 중국을 너무 모방한 나머지 자신들을 중심으로 그 주변을 주국 세계관의 축소판으로 재단한 다음 그 바탕에서 역사를 기록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자국의 만족감을 성취시켰는지는 모르지만 그만큼 왜는 당시 동아시아 역학관계속에서 축소되어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실토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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