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본 음식의 문화사
케네스 벤디너 지음, 남경태 옮김 / 예담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아주 특이하게 그림 속의 음식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음식이 그려진 시대와 그 배경에 대해 논하면서 음식이 어떻게 인간의 역사 안에서 감각적 본능을 넘어서 이성적 절제의 주제로 넘어왔는지도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중세와 르네상스시대로 음식그림을 한정시키지 않고 현대유럽으로까지  확대하여 보여준다. 그럼에도 중세 유럽의 모습을 소흘하게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와 대비되는 중세의 모습이 더 심도있게 보여진다.

인간의 역사 초기에 음식은 단순이 삶을 유지하는 기능으로 인식되었다. 음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최소한 죽을 염려는 없었다. 즉 먹는 것과 존재하는 것이 동일시 되었다. 하지만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심화되면서 잉여물이 생겨나면서 먹는 것과 존재하는 것은 서서히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이제 먹는 것은 삶과 죽음의 편가름이 아니라, 인격의 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던 것이다.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먹느냐가 잉여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관심이 되었던 것이다. 염장한 고기를 먹느냐 사냥한 싱싱한 고기를 먹느냐에 따라 신분은 구분되었다. 식탁에 고기가 많으냐 곡물이 많으냐에 따라 천함과 귀함이 드러났다.

 있던 시대로부터 음식이 신분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리고 음식과 소외, 음식과 풍자의 역사를 그림을 통해 보여준다. 저자는 이 실마리를 플랑드르 지역과 네덜란드 지역의 음식 정물화를 통해 분석한다. 사람들의 삶과는 거리가 있는듯이 보이는 청어나 치즈, 사과의 그림과 나이프의 배열을 통해 저자는 그림의 시점에서부터 이들이 갈구하는 욕망과 이들이 직면한 소외를 재미있게 지적한다. 저자에게 저지대 지역 화가들의 음식 정물화가 풍경화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 것만은 확실하다. 저자는 왜 저지대 화가들이 음식 정물화에 그렇게 집착했는가를 재미있게 해석한다. 대항해 시대로 열린 네덜란드의 전성시대는 그림에 대한 다양성을 열어 놓았다. 그리고 이 시대를 통해 아메리카 식민지로부터 들어온 다양한 식물들과 채소 그리고 열매들은 이국의 색다른 정서를 표현하는 도구이면서 자본주의 과시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자본주의는 레스토랑이라는 규격화된 식당을 통해 규격화된 식사를 제공함으로서 어느 정도 사회에서 식사를 통한 신분과 경제적 차이를 제거하는데 일조하였다.

자본주의적 분위기가 음식문화를 지배하면서 그림 속에서 변해가는 것은 자리의 위치이다. 주인의 자리가 언제나 고정되어 있었고, 그 자리에서 혼자 식사하는 그림이 어느새 어울리고 자리의 구분이 모호한 형태로 변모해 간다. 그렇다면 정말로 음식 앞에서 인간은 평등해 진 것일까. 그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진정한 평등이 이루어졌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와 유사한 사건은 오직 갈보리에서 한번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평등의 상징인 빵과 포도주가 남겨졌지만 그 음식을 통해 진정한 평등과 평화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은 아직껏 듣지 못했다. 격식이 사라진 식탁에서 신분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엘리트주의라는 것이 그것이다. 일정한 식사의 자리에 초대를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에 따라 보는 자의 입장에서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음식 그림의 역사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네덜란드 정물화 속에 표현된 음식그림이라 할 수 있다. 네덜란드 인들은 스페인 사람들 처럼 규칙적이지도 규격적이지도 않았다. 아무렇게나 배열한 듯한 음식은 후대 세잔이나 마네와 같은 거장들의 그림 속에도 그대로 유지된다. 그리고 음식그림의 대상으로 정한 과일, 생선, 조개, 햄, 잔에 담긴 포도주, 빵, 파이, 닭고기, 올리브, 견과와 같은 것은 지금까지도 우리들의 음식정물에 심심치않게 등장한다. 그리고 네덜란드 정물화 속에 표현된 음식그림을 자세히 보면 식사 장면을 그린 것이 아주 드믈다는 점이다. 식탁에는 오직 음식만이 존재할 뿐이다. 인간들이 나온다 하더라도 당시 네덜란드에서 유행하던 인물그림의 부수적인 모습일 뿐이다. 네덜란드 정물에서 표현하는 음식만을 그린 그림은 식사가 이제 더 이상 공적인 질서 속에서 과시되는 하나의 이벤트가 아니라 무질서하고 풍요로운 사적인 공간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것은 과거 그림에서 표현되었던 음식에 대한 죄악적인 모습이 서서히 제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것은 현실의 유혹적인 냄새가 도덕적 이념을 뛰어 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