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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 레핀 - 천 개의 얼굴 천 개의 영혼
일리야 레핀,I. A. 브로드스키 지음, 이현숙 옮김 / 써네스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스텐카 라친stenka razin이란 노래의 첫머리가 생각난다. '넘쳐 넘쳐 흐르는 볼가강물 위에서..'로 시작되는 비장한 러시아 민요는 라친이란 인물뿐 만 아니라 볼가강이란 또 하나의 유구한 역사를 우리들에게 알려 준다. 러시아 하면 두 개의 강이 생각난다. 죄와벌의 네바강과 볼가강이다.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핀란드만으로 빠지는 네바강이 지식인의 강이라면,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모스크바와 볼고그라드를 거쳐 카스피해로 빠지는 유럽 제일의 강인 볼가강은 민중들의 강이다.그 기나긴 강물 위에는 수 많은 민중들의 애환이 스며들어 있다. 이런 볼가강을 우리들의 머리 속에 가장 확실하게 각인시켜 준 사람은 레핀이다. 인생이란 삶의 무겁고 고된 짐을 끌고 가는 인간-혹은 인류-의 모습은 비장함과 사실성에 있어서 우리들을 전율케 한다.
레핀은 러시아 다운 것을 끊임없이 화폭에 구현하였다. 쿠르스크의 성체행렬이라든가, 이반뇌제와 소피아 황후의 광기와 같은 것은 서구인들이 러시아의 정치를 이해하는 고정관념이었다. 하지만 레핀은 이런 고정관념에 러시아적인 혼을 불어넣음으로서 단순한 광기가 아니라 러시아의 광기로 러시아의 신앙으로 재현해 내고 있다. 그리고 코사크라는 집단을 통해서는 러시아가 추구하는 폭발적인 팽창성을 보여준다. 이런 러시아적 모습은 고골리의 타라스 불리바-타라스 불바-에서 추구하는 낭만과 비장에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레핀은 이런 러시아적인 역사와 현실을 그리는 외에도 인물을 통해 당시대의 러시아를 적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수많은 러시아의 지식인들을 통해 러시아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레핀은 서구의 변방에 위치한 러시아의 미술을 서구의 수준으로 끌어올렸지만 그의 이런 노력은 혁명으로 인해 빛이 바래고 말았다. 오히려 그가 이룩해 놓은 업적은 혁명예술이라는 프로파간다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가 바라본 민중의 시각은 여전히 혁명의 와중에서도 유효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레핀은 혁명과는 거리를 두었다. 그에게 있어서 혁명은 변혁이 아니라 새로운 억압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