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나는 평화를 꿈꾸었네 - 1970년 베트남, 한 여의사의 일기
당 투이 쩜 지음, 안경환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1968년 월남 대통령 티우는 신년 기자회견을 병영에서 시작하였다. 탄약상자 위에 앉아 여유만만한 모습으로 조만간 월남전쟁은 종결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2달이 지난 뒤에 북베트남은 남부의 베트콩과 연계하여 舊正攻勢-월남어로는 테트-로 알려진 반격을 시작하였다. 이 시점이 바로 월남전의 분수령이었다. 당시 미국은 무려 50만의 병력을 월남에 파병해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이런 숫적 우위를 통해 월남전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고 생각하였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티우 대통령은 승리를 장담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호언장담을 미국은 물론 전세계도 믿고 있었다. 하지만 북부 월남의 대반격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왔다. 미국에서는 반전운동이 불붙기 시작하였고, 프랑스에서는 학생운동이 일어나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부정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독일에서도 하버마스를 비롯한 진보좌파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왜 프랑스가 베트남이란 진흙탕에서 허우적거렸는지를 알게되었고 결코 자신들이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판단은 결국 베트남에 대한 초토화작전으로 이어지게 되고 월남은 북부와 남부 가리지 않고 B-52 폭격기의 폭탄 웅덩이에 뭍혀버리게 된다.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분위기는 이런 상황이었다. 베트콩 자신들은 세계를 놀라게하는 반격을 가했음에도 정글의 어둠 속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자신들이 승리하였음에도 승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였고, 실감할 수 없었다. 밤낮으로 미군의 헬리콥터 공습과 미군 정찰대와의 교전 속에서 그들은 언제나 패배자였고 도피자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불 같은 혁명의 의지만이 이들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었다. 그래서 저자는 일기 사이 사이에 오스트로프스키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라는 소설이 자주 인용된다. 오스트로프스키는 붉은 불과 푸른 물을 통해 의지가 단련된다고 했던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강철은 불에 달굴수록 강해진다고 하였다. 어찌보면 이들 혁명가들의 본질은 종교인의 심성과 유사성을 띠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에 대한 철저한 금욕적 자세를 견지하면서 타인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자비, 그리고 적-이단-에 대한 불꽃같은 증오심의 표출은 아주 유사하다. 그러기에 이 일기의 주인공은 자신이 외롭게 고립되어 있을 때에도 자기 확신과 본능 사이에서 방황한다. 하지만 그 방황도 잠시뿐 그녀는 순교의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는 결국 순교자가 된다. 그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혁명을 위해...

개인의 일기를 읽어 간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런 작업이다. 한 인간의 내밀함은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기록하는 공포와 기쁨, 슬픔은 온전히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의 한 부분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당 투이 쩐의 일기 역시 읽어 가는데 이런 어려움이 있다. 뿌띠 부르주아 출신인 저자는 당원이 되기 위한 열망으로 가득차 있지만 당은 그녀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를 쉽게 무너질 수 있는 당성이 약한 인간으로 판단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렇기에 그녀는 오스트로프스키의 강철처럼 단련되기 위해 헌신하고 또 헌신한다. 그녀는 당원이 되기 위한 열망으로 헌신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짜 강철이 되었음을 자각하지 못한다. 바로 그 순간 당은 강철에 합당한 지위를 그녀에게 부여한다. 이는 마치 당이란 거대한 유기체가  인간의 운명을 가지고 노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일기에 보이는 여성의 섬세함과 의사로서의 절망감 그리고 혁명의 승리를 갈구하는 전사의 모습이 사랑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약해지는 주인공과 겹쳐진다. 이런 모습 때문에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인간임을 또 사랑에 번민하는 한 여성임을 결코 잊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만약 그녀가 혁명 만세라든가 또는 어설픈 구호를 외치고 죽었다면 일기 속의 내면은 빛 바랜 종이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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