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로 색슨족의 역사와 언어
박영배 지음 / 지식산업사 / 200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잉글랜드 복부의 요크라는 도시의 이름은 영어의 변천사를 유추할 수 있는 흥미로운 예라 할 수 있다. 이 단어는 원래 켈트어 Eburacon으로 朱木의 서식처란 뜻이었다. 로마가 브리튼을 통치하던 시기에 이 말은 라틴어인 Eboracum으로 약간 바뀌었다. 로마인이 브리튼에서 물러간 뒤 이 섬에 들어온 앵글로색슨인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이 라틴어를 수퇘지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 Eoforwic으로 바꾸었다. 그 후 영국에 침입한 바이킹들의 귀에 이 말이 마치 Iorvik처럼 들렸으며 세월이 흐르면서 Iorvik은 Iork로 짧게 되었고 마침내 오늘날 쓰이는 York라는 지명이 된 것이다. <본서70쪽 참조>

이 책은 브리튼 섬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민족들의 이동과 언어의 변천사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브리튼 섬에서 현재 우리가 영어라고 불리우는 언어가 어떻게 다른 언어와의 투쟁에서 승리하여 종주언어로 자리잡게 되었는가를 설명해 주는 책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단순히 언어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키지 않는다. 언어에 따른 문화사적인 면도 함께 다루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아주 생소한 노르만 정복 이전의 브리튼 섬의 역사를 언어학적인 관점에서 알려준다. 앵글로색슨인들이 이 섬에 들어오기 전에 켈트인들이 살았고, 켈트인들은 이들보다 앞서 이주했던 픽트족과 스코트족을 북쪽으로 몰아내었다. 그리고 켈트족은 로마인들에게 정복당했고, 로마가 물러간 뒤에는 앵글로색슨인들의 침입을 받았다. 그리고 앵글로색슨인들 역시 데인족의 침략으로 자신들의 북쪽 지역을 넘겨주어야만 했다. 이렇게 복잡한 인종적 부침과정에서 이 섬의 언어는 켈트어에서 라틴어로 라틴어에서 게르만어로 게르만어에서 앵글로색슨어로 부침과 잠식의 역사가 지속되었다. 여기에 스칸디나비아어 역시 자신들의 흔적을 남겨 놓았다. 이런 과정에서 영어가 주언어로 정착하게 된 것은 이 섬에서 벌어진 무자비한 정복의 역사를 말해준다 하겠다. 켈트족은 픽트와 스코트족을 로마인과 앵글로색슨인들은 켈트족을 데인족은 앵글로색슨족을 무자비하게 몰아붙였다. 하지만 이런 정복의 과정에서 이 섬에서 주도권을 끝까지 유지했던 앵글로색슨족의 언어가 절대 다수의 언어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앵글로색슨인은 알프레드라는 탁월한 지도자를 통해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와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노르만족의 침입으로 앵글로색슨족이 정복 당했지만 그것은 소수이 정복자가 다수의 지배자의 섬속에 갖힌 상황이었다. 이 섬 속에서 정복자의 언어인 프랑스어는 2세기 동안 명맥을 유지했지만 대다수는 영어를 사용하였다. 즉 프랑스어는 궁중언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반면에 대중의 언어였던 영어는 하인과 유모 혹은 농민들을 통해 궁정과 지주의 안방으로 서서히 스며들었다. 그러면서 영어는 정복자의 언어를 하나 더 흡수하여 자신의 어휘를 풍부하게 하였다. 이렇게 정복의 과정에서 정복자의 영어가 아님에도 영어가 살아날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중요한 것은 라틴어와의 관계에서 승리하였다는 점이다. 중세시대 라틴어는 지식인의 언어였다. 하지만 이 고급언어는 도시의 언어였지 촌락의 언어는 아니었다. 이런 상황은 정복자들이 들어올 때마다 되풀이되었다. 이 결과 영어 이외의 수많은 언어들은 정복자들이 후퇴하면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영어는 여전히 농민들의 언어였던 것이다. 이런 생명력 덕분에 영어는 결국 브리튼 섬의 최종적인 승리자가 되었던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