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
존 르 카레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르 카레의 작품에는 일관성이 존재한다. 그것은 직업세계에 대한 애틋함이다. 그의 시선에는 첩보영화의 상투성, 예를들면, '죽이기 전에 말해주지'와 같은 것이 없다. 그 세계에도 우리들이 느끼고 접촉하는 똑같은 현실이 있지만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뿐이다. 우리들은 커피 솦에 들어가면서 그곳에 사람이 몇 명 있고, 화장실은 어디이며, 비상구가 어느 쪽인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르 카레의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눈에 띠지 않는 곳을 찾아 앉는다. 이런 일상의 긴장은 그 세계의 사람들에게 우울함과 고독함을 덤으로 주고 있다.
이 소설에 르 카레의 후기 작품에 나오는 중요인물들이 다 등장한다. 그들의 과거가 언뜻 언뜻 드러나는 과정에서 스파이 세계의 관계가 드러난다. 인간사에서도 그렇다. 언제 어디서 한번 만났던 사람들이 반대 세력의 정상에 앉게되면 그 만남의 순간은 증오로 혹은 우정으로 기억된다. 그러면서도 이들 사이에는 기묘한 우정이 싹튼다. 상대를 존중하면 존중할 수록 그 기묘함은 극대화 된다. 이 세계는 아리엘 도르프만의 세계처럼 그 고통의 순간이 일순간에 망각되었다가 어느 한 순간 -예를 들면 슈베르트의 음악-폭발되는 그런 상황이 결코 아니다. 이 세계는 우연의 연속이란 없다. 오로지 처음부터 끝까지 체스판을 응시하는 전문가들만이 있을 뿐이다. 그 지루한 과정을 기다리며 득실을 계산한다. 가장 하찮은 폰은 네 개가 룩이나 비숍 한 개와 같은 가치이고 룩이나 비숍 두 개는 퀸 하나와 같은 것이라는 등가의 법칙을 머리속에 그린다. 자신의 폰이 하나 상실되었다면 상대의 폰 하나를 어떻게하든 뺐어와야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르 카레가 바라본 스마일리의 세계인 것이다.
이 평범함을 가장한 세계를 슬픈 낭만이라고 불러야하나. 레비 스트로스는 사라져가는 원시를 '슬픈 열대'라고 표현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