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날 부여를 여행했다. 일박이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아주 만족스러웠다. 우선 부여의 크기가 가벼운 여행길로는 제격이었다. 버스 터미널을 중심으로 백마강, 정림사, 박물관이 모두 걸어서 15분 정도의 거리였다. 터미널 근처에 숙소를 정하면 하루종일 걸으며 유적과 유물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도시가 바로 부여였다. 하지만 크기와 깊이는 다른 법.

정림사지터에 있는 정림사 박물관은 여러가지로 알찬 장소였다. 정림사 5층석탑을 주제로한 하나의 박물관은 공주의 무령왕릉 박물관을 연상시키지만 맛은 약간 달랐다. 무령왕릉이 있었던 과거의 영화로운 모습을 반추하는 곳이라면 정림사 박물관은 없어진 한 제국의 몰락을 슬프게 바라봐야만 하는 차이가 아닐까? 사실 백제의 유물은 워낙 철저하게 파괴되어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 기록에도 나타나듯 점령군 나당군의 방화로 백제의 수도 부여는 3일 밤낮을 불타올랐고 백마강은 그 불빛에 밤에도 번들거렸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에는 백제를 대표할 만한 유적이 거의 없다. 남아있는 정림사 5층석탑은 그 장대함을 뽐낼 금당이 남아있지 못하다. 그리고 그 장대한 탐의 몸체에는 소정방의 낙서가 휘갈겨져 있다. 그럼에도 정림사 박물관은 그 탑과 이름을 알 수 없는 절을 가지고 다양한 모습으로 백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부여박물관은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부소산성 내에 위치한 예전의 건물을 뒤로 하고 정림사 박물관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이전하였다. 김수근 선생의 설계가 워낙 시비의 대상이 되었던지라-시비의 촛점은 왜색倭色이었다-아주 옮겨버리고 말았다. 예전의 건물이 일본의 신사神社와 유사성을 띠고 있지만 지금의 박물관의 모습은 아무런 시비거리도 제공할 수 없을 만큼 평범하게 만들어져 있다. 부여 박물관의 핵심은 최근에 발견된 금동향로라고 할 수 있다. 유불선의 세계가 혼합된 그 다양하고 섬세하며 화려한 모양은 백제박물관의 새로운 얼굴이라 할 수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창왕 사림함이나 사택지적비와 같은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유물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그리고 백마강으로 나가 나룻배-지금은 유람선이지만-를 타고 백마강을 돌아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옛 분들의 말에 따르면 오래 전에 백마강 나룻배 위에 화롯불을 실고서 그 불로 강에 잡아올린 피래미와 같은 물고기로 튀김을 해서 먹기도 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런 낭만적인 풍경은 없다. 백마강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오른편으로 낙화암이 보인다. 낙화암은 우리의 상상 속에는 백척절벽으로 언제나 기억되지만 현실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다. 이런 상상과 현실의 차이가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백제의 모습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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