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프랑스사를 읽다보면 항상은 아니더라도 귀에 익은 두 사람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이 두 사람은 거의 같은 시기를 살았으면서도 서로 다른 세계 속에서 존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 사람은 장 프루아사르Jean Froissart(1337~?1400), 다른 한 사람은 프랑수아 비용Francois Villon (1431-1463)이다. 이 두 사람은 삶의 궤적을 보면 이 말이 더 한층 실감난다. 프루아사르가 백년전쟁이 시작되는 1337년에 태어난 반면 비용은 백년전쟁이 끝난 뒤(1453년)에도 십 여 년을 더 살았다. 프루아사르는 116년 동안 지속된 백년전쟁 가운데 그는 63년을 보낸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관심은 온통 전쟁과 그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의 대표작인 <연대기Chronicles>는 백년전쟁의 과정에서 발생한 전쟁의 숭고함과 잔인함 그리고 야비함과 거룩함을 동시에 기록하고 있다. 아쉽게도 그의 연대기는 국내에서 아직 번역되지 않았지만 영어 번역본은 인터넷 상에서 쉽게 구해 읽어볼 수 있다. 프루아사르에게 있어서 전쟁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삶 속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었다.

프루아사르의 연대기를 이해하려면 ‘칼레의 이야기’를 살펴봐야 한다. 이 역사적 기록은 잉글랜드의 에드워드3세에게 포위된 칼레가 주민학살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시의 대표 6명이 삭발을 하고 밧줄을 목에 건채 에드워드 3세 앞으로 나와 항복의 치욕을 겪으며 칼레를 구원한 이야기이다. 마치 성서 속의 ‘한 사람이 죽어 전체를 살릴 수만 있다면...’이라는 대목이 생각나는 이야기이다. 프루아사르는 이 이야기의 정점에 프랑스라는 국가를 올려놓지는 않았다. 당시 프랑스는 단일한 민족국가도 위대한 프랑스도 아닌 카페왕가의 왕국이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잔 다르크의 이야기와 함께 잉글랜드에 대항하는 카페 왕가의 프랑스를 그리고 잡다한 지역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였다. 물론 이런 과정의 신화화는 조르쥐 뒤비의 <부빈의 일요일>에서도 취급하고 있지만 당시의 프루아사르는 이런 신화화를 상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 당시의 기사도 정신과 그 맥락에 따른 하나의 삽화였을지도 모른다. 이는 프루아사르가 전쟁의 한 가운데서 생의 대부분을 보냈지만 그는 여전히 중세의 기사도적 사회질서를 신봉하고 믿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반면 비용은 전쟁의 살벌함이 가시지 않은 1431년에 태어났다. 전쟁의 막바지에 다다랐지만 프랑스의 카페왕가는 여전히 잉글랜드의 플란타지넷트가에 고전하고 있었고, 페스트의 창궐, 농촌지역의 황폐는 전쟁이 결코 낭만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전쟁의 소모적인 낭비성 잔혹은 어린 비용의 뇌리에 공포의 이미지를 커다랗게 각인시켰다. 그에게 있어서 전쟁은 기사도적인 유희가 아니라 삶 그 자체의 존재를 가늠하는 생존게임으로 비춰졌다. 비용이 공부하던 파리의 분위기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이 혼란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럴듯한 포장이 있어야 함을 자각했고, 그 결과 그는 파리 대학에서 문학사 자격을 획득하고 당시 가장 안정적인 직업이었던 성직에 몸담아 일생을 보내려 하였다. 그러나 세속의 찌든 때를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비용은 악동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의 분방함과 모험과 방랑기질, 범죄적인 성향과 회한과 속죄, 연민과 공포와 종교적인 갈등, 그리고 삶에 대한 환상은 그를 중세에 살고 있지만 근대의 탐미주의적 인물을 보는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 즉 비용은 중세 속에서 근대성을 이끌어낸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중세의 시대를 연이어 살다간 프루아사르와 비용은 평가의 호오好惡에도 불구하고 근대 이후 재발견 되었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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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2 2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dohyosae 2007-08-03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피에르 아벨라르Pierre Abelard는 1079년에 태어나 1142년에 죽었으니 이들보나 한참 전의 인물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들이 활동하던 시절에는 아벨라르의 이름마저도 잊혀졌는지 모르죠... 비용의 시 귀절처럼 '그대 지금 어디에 있느뇨...'이지만 아벨라르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시대에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드가 있었다는 것이 비극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