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병사 - 어느 독일 병사의 2차 대전 회고록
기 사예르 지음, 서정태 엮음 / 루비박스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이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인들은 엄청난 무력감과 죄책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들 패전국 국민들은 전쟁이라는 커다란 재앙을 공유하였지만 그 토론의 장에 결코 초대받지 못하였다. 게다가 많은 병사들-이들은 아버지이면서 아들이었고 남편인 사람들이었다-이 소련의 강수용소에 억류되어 전후 복구에 투입되었다. 이들 강제수용소의 병사들이 마지막으로 귀국한 것이 1955년이었다. 그때까지 독일은 전쟁이 완결된 것이 아니었다. 이런 자괴감의 날들 속에서 독일 신문에서 재미있는 조사를 하였다. 질문은 간단하였다. "전쟁이 끝난 지금 가장 생각나는 단어는 무엇입니까?" 많은 단어가 신문사로 몰려들었지만 가장 압도적인 수를 차지한 단어는 "고향故鄕"이었다고 한다. 독일어로 '하이마트Heimat'인 이 단어는 단순히 고향으로만 번역되지 않는 폭넚은 단어이다. 이 단어는 고향이면서 마을이고 마을이면서 고국 혹은 모국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그리고 나즈막한 중저음의 독일어 성음으로 발음되는 하이마트는 어떤 또 다른 마음속의 울림을 느끼게 한다.

왜 독일인들은 전쟁이 끝났을 때 이 단어를 생각하였을까? 그들은 고향이라는 단어 속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한 것일까. 그들은 이 단어를 통해 전쟁이 앚아간 모든 것을 조금이라도 찾았을까. 그 당시 독일인들의 무력감과 피곤함은 하인리히 뷀의 소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네'라는 소설에 잘 드러나 있다.

잊혀진 병사라는 제목의 책은 이 고향을 찾기 전의 이야기이다. 아니 독일이 동방에 새로운 고향을 만들려고 한 시절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새로운 고향을 만든다는 것은 누군가 오랫동안 지내온 고향을 잃어버린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결코 어느 한쪽이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러시아는 독일과 조국전쟁을 진행하면서 "어머니 러시아"라는 슬로건을 외쳤다. 이 구호 속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즉 독일과 러시아는 같은 단어를 두고 서로 상반된 입장에서 싸웠던 것이다. 그러기에 전쟁의 양상이 더욱더 잔인하고 처절했는지 모른다.

이 책은 결코 유쾌한 책은 아니다. 곳곳에 기록되어 있는 전쟁의 참상은 우리가 그동안 배워온 이차세계대전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파괴자 독일군, 피해자 러시아라는 등식이 이 책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오직 인간들의 고통이 있을 뿐이다.  

"전쟁의 진흙탕 속에서 구르다 천국으로 올라온 병사들에게 하느님이 물었다. '아담아, 너 어디에 있었느냐?' 한 병사가 대답하였다. '지옥에 있었습니다.'"

* 이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슈판다우 포라는 독일 제식병기가 나오는데, 정확히 무엇인지. 총인지  대포인지...  전쟁 문학이나 기록을 번역할 때 군대식 용어나 장비의 용어가 생소하기 때문에 많은 실수가 일어난다. 여기서도 그런 실수가 너무 많이 보인다. 좋은 책이 이런 사소한 문제로 격이 떨어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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