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되지 않은 진실 하나

Congo란 지명은 레오폴드 벨기에 왕의 사랑스런 공주가 키우던 강아지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레오폴드가 아프리카의 공백지대를 보며 자신의 야심을 구상하고 있을 때 막내 공주가 애완견과 함께 들어오자 그는 즉석에서 그 미지의 장소를 강아지의 이름인 콩고로 명명했다고 한다.

진실된 이야기 둘

콩고는 원래 브라자빌 콩고와 레오폴드빌 콩고로 양분되어 있었다. 브라자빌 콩고는 그 지역을 첫번째로 탐험한 프랑스의 탐험가 브라자를 기리기 위해 수도의 이름을 그렇게 붙인것을 유럽인들의 무관심과 공명심에서 그러하였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레오폴드빌 콩고 역시 벨기에의 왕 이름을 딴 수도의 이름으로 거대한 콩고를 프랑스와 벨기에가 양분하여 구분하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 두 나라는 각기 다른 경로로 역사 속에 편입된다. 브라자빌 콩고는 훗날 콩고인민공화국으로 레오폴드빌 콩고는 콩고공화국에서 자이레로 다시 콩고공화국으로 변하였다. 하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지역에 대한 서구 열강의 엄청난 관심이라는 점이다. 풍부한 수력과 자원이 매장된 이 지역은 아프리카판 러시아의 시베리아이기 때문이다. 자연적 장애만 극복된다면 엄청난 잠재력을 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적 허구 셋

마이클 크라이튼은 콩고라는 소설에서 이 지역의 가능성과 야만성을 적절하게 표현하였다. 훈련된 고릴라에 의해 은폐되어 있는 황금의 도시 잔지는 콩고의 불확실한 미래이며 현재이다. 그 불확실성이 과학에 의해 개화된다는 그의 생각은 어쩌면 맞을 수도 아니면 틀릴 수도 있다. 크라이튼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에서 흑인 용병-혹은 짐꾼-들이 콩고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부르는 '호텔 캘리포니아'는 기괴한 느낌을 준다.

역사적 현실 넷

콩고는 60년대 초 독립을 하면서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그것은 서구 식민주의에 의해 재단되어졌던 콩고가 갑작스럽게 독립하면서 원하든 원치않든 맞이하게된 서구열강의 개입이었다. 신임수상 페트리스 루뭄바-그의 사후 그의 이름을 딴 대학이 모스크바에 설립되어 제3세계 혁명가들의 양성소가 되었다-와 서방의 지원을 받는 모이세 촘베 간의 대결은 촘베의 승리가 확실한 것이었다. 서방세계에 기댈 수 없었던 루뭄바의 선택은 동구권이었다. 서방의 언론은 이를 이용하여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로 콩고의 내전을 호도하여 루뭄바의 제거가 민주주의의 확고한 승리라는 것을 선전하였다. 이것은 민족주의자 호지명을 서방이 몰아붙여 공산주의쪽으로 기울게한  베트남의 상황과 유사함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콩고에서 서방의 승리는 촘베도 아니었다. 미국의 지원을 획득한 모부투가 차지하였다. 그는 콩고의 이름을 자이레로 바꾸고 표범가죽으로 만든 모자-그것도 아프리카 특산품이 아니라 프랑스의 고급양복점에서 만든 것-를 쓴 것으로 대치되었을 뿐이다. 그 이후 자이레는 콩고의 혼란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지금도...

미래적 현실 다섯

아프리카는 어떻게 변모해 갈 것인가? 서구에 의해 인위적으로 분할된 경계선은 아프리카를 언제나 끔직한 '태양의 눈물'로 만들지도 모른다. 다양한 인종과 언어는 하나의 국가라는 이데올로기에 편입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그런 예는 70년대 초의 나이지리아 내전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다. 사실 아프리카에서 종족과 국가가 일치하는 경우는 사하라 이북의 북아프리카 뿐이다. 그 이남의 국가에서는 종족과 경계가 일치하는 경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것은 서구 식민제국이 자신들의 편의에 의해 경계선을 고의적으로 확정하였기 때문이다. '결코 화합할 수 없게 하라'란 식민지 정책의 철저한 구호 아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아프리카의 경계선은 아프리카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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