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의 그림들
아니타 알부스 지음, 배진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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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동아시아의 역사를 읽다보면 아주 근접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질서'라는 부분이다. 유럽은 신적 질서의 지상적 구현이라는 큰 틀 안에서 사회분화가 이루어진 반면에 동양은 신의 대리자로서의 절대군주의 강림에 의한 직접적인 하늘의 질서를 구현한다는 점이다. 이 두 관점은 아주 다른듯 하면서도 서로 유사성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질서를 구현한 것은 사회체제의 유지라는 측면에서 아주 중요하였다. 서양이 창조에 바탕을 둔 질서였다면 동양은 하늘의 뜻을 구현하는 질서였다. 창조와 천명은 동서양 질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천명을 강조한 동양적 질서는 덕을 앞에 내세운 반면 창조적 질서의 서양은 믿음이었다.

믿음의 토대는 창조질서가 지상에 착오없이 시행되는 것을 의미했다. 태양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명백한 것. 이런것이 바로 확실한 창조질서가 지상에 드러나는 것이었다. 즉 자연질서처럼 분명하게 반복되어 지는 것이 바로 구세주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반복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였던 것이다. 이런 자연적 질서의 명확함은 유럽인들에게 자연의 이해라는 부분을 또 다른 숙제로 제공하였다. 즉 자연을 이해하면, 아니 자연의 질서를 파악하면 창조질서를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발상에서 16세기의 유럽인들은 식물과 지도와 같은 분야로 눈길을 돌렸다. 무수히 그려진 세밀한 식물의 모습은 유사성이란 개념을 통해 식물과 동물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발전하고 결국에는 아담이 이 세상의 모든 사물에 이름을 부여하듯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관점에 따라-이는 유럽이 곧 새로운 아담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식물의 종,속,과,강,목의 이름을 정하는데서 절정을 이루게 된다.

지도 역시 이런 창조적 질서의 산물이었다.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불분명한 부분이 있어서는 안되었다. 왜냐하면 신이 불분명하게 창조한 부분이 있다면 그 자체로 완벽한 신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신은 숨겨는 놓되 결코 불확실하게 창조하지 않았다는 것이 유럽인들의 신념이었다. 그 숨겨논 부분을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신적인 창조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런 사고방식은 당연히 미지의 땅을 향해 나아가야했고, 그 숨겨진 부분이 자신들의 눈 앞에 드러나는 것이 바로 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들이 추구한 것이 신을 영광이었고, 개인의 명예였던 간에 분명한 것은 창조질서라는 믿음 위에 유럽인들은 과학의 질서를 교묘히 접목시켰다는 점이다. 그것은 창조주의 대우주에 비견되는 순전히 인간이 만들어낸 소우주의 질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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