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의 서 문명텍스트 38
우사마 이븐 문끼드 지음, 김능우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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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의 서는 제목처럼 심오하고 어려운 책이 아니다. 오히려 재미있게 읽히는 한 개인의 역사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오래 전 레바논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민 말루프의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을 읽었던 적이 있다. 이 책에서 아민 말루프는 유럽 중심의 십자군 전쟁의 시각을 아랍인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아민 말루프는  우사마 이븐 문끼드라는 저자의 책을 인용하기도 했는데 그가 인용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아민 말루프는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에서 실제로 아랍의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여 지금까지 유지해온 유럽 편향적인 십자군 전쟁의 맹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우사마 이븐 문끼드의 이 책 역시 서구 편향적 십자군 이야기에 맛을 들인 우리들의 시선을 교정해 줄것이다.

성찰의 서는 제1차 십자군 전쟁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된 시기에 태어나 쿠르드의 위대한 영주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해방하는 것을 본 인간의 이야기이다. 십자군은 이름처럼 종교적으로 거룩한 전쟁이 아니었다. 탐욕과 배신과 위선이 십자군의 실체였다. 자신의 신앙을 고수하기 위해 타인의 신앙을 무시하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타인의 행복을 무너뜨린 십자군의 실체는 예루살렘이란 상징으로 인해 너무도 왜곡되었다. 실제로 십자군의 예루살렘 정복은 성지의 탈환이 아니라 피의 기록이었다. 그 무모한 학살은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해방했을 때 보여준 아랍의 관용과는 너무도 다른 것이었다.

예루살렘 함락의 비극은 이 당시 태어난 우사마를 비롯한 동시대의 아랍인들에게 서구의 야만성을 각인시켰다. 이들은 오늘날 팔레스타인 사람들처럼 빼앗긴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거룩한 성전에 자신을 바쳤다. 하지만 그 당시 아랍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였다.  분열된 아랍세계는 단일한 지도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독립적으로 유럽의 침입자들과 싸우거나 유대를 맺어야 했다. 우사만의 기록에도 나타나듯 유럽의 병사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용맹스런 존재였다. 이런 존재를 분열된 아랍은  감당할 수 없었다. 

우사마가 이런 분열된 아랍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언제나 한결같다.  '알라의 위대함'이 그것이다. 아랍이 이렇게 된 것은 알라의 좀 더 큰 뜻이 작용하기 위한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즉 알라의 의지에 의해 자신들의 성지를 야만족에게 빼앗겼다면 그 역시 알라의 의지에 따라 다시 해방시킬 것이란 믿음이 그것이다. 그의 이런 관점은 인생을 보는 관점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알라의 뜻이 그러하다면 죽을 수밖에 없고 아니라면 살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살고 죽음의 세계를 떠나 언제나 알라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며 진리라는 것이다.

이책은 이런 인생의 교훈적인 것 외에도 당시 유럽 기사들의 행태나 군사전술, 아랍 세계의 뛰어난 문명수준과 유럽의 후진적인 모습, 그리고 이국 땅에 눌러앉은 유럽인들이 어떻게 아랍 세계에 동화되어 가는지를 담담히 운명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우사마는 훌륭한 전사이면서 문장가였다. 그는 이 책을 기술하면서 아랍의 유려한 싯귀를 자주 인용하고 있다. 아랍어는 가장 배우기 힘든 언어이지만 운율적으로 아름다운 언어라고 한다. 특히 싯구를 읖는데 있어 아랍어의 리듬감을 따라올 언어가 없다고 한다. 차갑고 어둔 사막의 밤에 모닥불 주위에 앉은 아랍의 전사들이 시인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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