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쿠라 막부 정치사의 연구 한국문화사 한국연구재단 저술총서 8
남기학 지음 / 한국문화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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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에서 가마쿠라 막부, 일명 겸창막부鎌倉幕府(1192-1333)는 특이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또 이 시대는 한국사의 고려 무신정권武臣政權(1170-1270)과 맞물린 시기이기도 하다. 거의 같은 시기에 한국과 일본에서 문신지배의 질서를 거부하고 무신들이 정권을 잡은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한반도와 일본열도에서 각기 정권을 잡은 무신들은 이후 길을 달리하게 된다. 한반도의 무인정권은 거대한 몽골제국과의 지난한 힘겨루기에서 기진맥진한 후 소멸되었고 , 이후 한반도에서는 무인들이 정권을 장악할 기회가 사라지게 된다.  반면 일본열도에서 성립된 무인정권은 몽골의 침입을 거국적으로 막아낸 후 자신들의 입지를 튼튼하게 하여 앞으로 열리게 될 무로마치室町 막부와 에도江戶 막부의 길을 열어주게 된다. 즉 가마쿠라 막부는 이후 명치유신을 지나 군부에 의한 2.26사건과 5.15 사건을 통해 군국주의로 연결되는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고려에서 무신정권이 성립된 12세기는 사회 경제적 변동이 촉진되고 유교적 정치이념이 심화된 시기였다. 특히 유교적 정치이념의 심화는 지배계급 안에서 정통성의 강조로 이어진다. 이런 경향은 정치에서도 문벌귀족의 득세와 경제적 집중으로 농민과 무인들의 몰락으로 나타나게 되고 이에 대한 반발로 무신들의 정변이 발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무신정권이 성립되면서 문벌귀족의 득세로 나타난 사회 경제적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정치력의 한계를 자신들이 배척한 문신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면서 문신에서 무신으로 권력의 이동만 있게 되었을 뿐 전반적인 통치질서는 유교적 이념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일본에서 가마쿠라 막부를 성립한 무신들 역시 이런 문제에 봉착하였다. 승구承久의 난으로 무신들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공가公家(천황과 귀족집단)의 정치지배를 끝내고 자신들의 지배력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이들 역시 고려와 마찬가지로 정통성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무신들은 천황으로부터 지배의 정당성을 부여받아야만 했다. 이는 다른 문제를 야기하였는데 막부가 정권의 실체였지만 천황으로부터 권위를 부여 받은 것에 대한 통치철학을 세워야만 했다. 즉 지배 이념을 정립해야만 했다. 무로마치 막부는 힘을 의미하는 무위武威와 문을 뜻하는 무민撫民 사상을 정립하기에 이른다.

무로마치 막부의 지배자들은 천황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자신들의 통치에 대한 정당성을 과시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역사서를 기술하기도 하고 천황의 통치이념을 모방한 자신들의 지배이념을 창출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무신들은 자신들의 통치도 천황의 치세에 못지않은 것이란 자부심을 드러내었다. 

이 과정을 읽다 보면 마치 중세 잉글랜드를 침입한 노르만 귀족들이 자신들의 통치를 위해 기사도를 강조하여 무력의 정당성을 교묘히 희석시킨 것을 떠오르게 한다. 일본의 무사계급들 역시 자신들의 위치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천황이란 존재를 유지시키지 않는 한 자신들의 위치는 언제나 훼손될 수 있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막부의 지배자들은 무위를 통해 반대자를 철저히 억누르면서 무민을 통해 백성들을 다독거렸다.

무민과 무위를 통해 지배한 막부정권은  한계성을 보이기도 한다. 즉 자신들 역시 이전 시대에는 정권의 기회를 잡을 수 없었던 하위신분이었음에도 정변을 통해 정권을 잡고 신분상승을 이루었지만 공고한 통치질서를 확고히 하기 위해 신분의 이동을 철저히 금지하였다. 그리고 무민의 이상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는 주저없이 무위를 과시하였다. 

가마쿠라 막부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한 것은 내부적인 통치에서 온 것이 아니라 외부적인 압력을 극복하면서 실현되었다. 1274년과 1281년에 일어난 원元의 일본 정벌이 그것이다. 두 차례에 걸친 원의 침입을 막아내면서 가마쿠라 막부는 정치적 안정을 또 통치의 정당성을 얻었던 것이다. 이 두 차례의 침입을 막아낸 것은 무사들의 집단적 자부심이었다. 이 무위의 자부심은 이후 일본의 역사에 국가적 위기가 찾아올 때 마다 무민의 이상을 교묘히 감싼 형태로 등장하였다. 전국시대를 통일한 풍신수길은 일본, 중국, 인도를 어우르는 대제국을 꿈꾸며 조선을 침략하였고 그 후계자들은 훗날 대동아공영권이란 무민의 이상에 군국주의란 무위를 덮씌워 미증유의 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가마쿠라 막부는 이런 일본의 무민과 무위라는 이중성을 표출한 시작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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