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전쟁 1954-1962 - 생각하는 사람들의 식민지 항쟁 스투디움 총서 8
노서경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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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5월 7일 프랑스의 반대편에 있는 인도차이나의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군이 호지명이 이끄는 월맹군에게 패배하였다. 

1954년 10월 31일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의 병사들이 알제리에 주둔 중인 프랑스군의 병영과 관공서를 공격하였다. 이틑날인 11월 1일 FLN의 이름으로 프랑스와 전쟁을 시작한다는 벽보가 곳곳에 나붙었다. 

전쟁의 시작은 아일랜드 공화국군이 1921년 부활절 봉기를 일으킨 것과 비슷하였다. 알제리인들은 이 전쟁의 시작에 무관심했고, 프랑스는 이것이 8년 동안 벌어질 비극의 시작인지 알지 못했다. 어찌되었든 알제리와 프랑스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프랑스는 의례적으로 외인부대를 파견하고 알제리에 산재한 정당들을 해산하는 것으로 전쟁을 맞이하였다. 

전쟁은 프랑스나 알제리 모두 길게 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1956년 말 가톨릭 신자이자 좌파 언론인 로베르 바라가 쓴 징집병들의 이야기가 출판되면서 알제리 전쟁은 갑자기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양심과 비도덕의 문제로 비약되기 시작하였다. 프랑스의 지식인들은 '프랑스의 알제리'에 대해 깊은 숙고를 시작하였다. 지식인들이 알제리 전쟁을 철학적, 사회학적으로 탐구하는 동안 알제리는 보복과 보복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변모하였다. 프랑스군은 인도차이나에서 배워온 고문과 군사기술을 사용하여 알제리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이에 맞서 FNL도 무자비한 보복으로 맞대응하였다. 죽고 죽이는 아수라장 속에서 프랑스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제2차 세계대전 시절 나치 독일의 비밀경찰이 레지스탕스를 사냥하고 고문하는 방식으로 알제리를 다스리고 있음을 알았다. 빛나는 레지스탕스 전통의 프랑스 지식인들은 이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 저항의 프랑스가 탄압의 프랑스로 변질되는 것은 프랑스의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알제리인들은 프랑스의 잔악함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알제리인들은 프랑스가 나치에 굴복했을 때 자신들의 조국 프랑스를 위해 싸웠다. 알제리인들에게 전쟁은 자신들이 프랑스의 일원으로 싸움으로서 프랑스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보증으로 여겼다. 하지만 알제리 전투에서 보여준 프랑스의 무자비함은 알제리인들에게 자신들이 결코 프랑스의 일원이 아님을 자각하게 하였다. 

프랑스는 알제리가 프랑스임을 강조하면서 알제리에 집착하였다.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이 알제리에 투자한 문명과 과학이 알제리를 변화시켰다고 주장하였다. 프랑스인들은 왜 알제리가 이런 문명의 혜택을 거부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였다. 

알제리인들은 프랑스의 이중성을 처절하게 느꼈다. 프랑스의 알제리는 결코 자신들을 동등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직 알제리의 알제리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프랑스와 알제리는 전쟁 기간 내내 내부적으로 동상이몽이었다. 프랑스 국내는 알제리의 독립을 요구했지만 알제리의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의 알제리를 외쳤다. 반면 프랑스에 유학온 많은 학생들은 프랑스의 알제리를 외쳤지만 알제리의 민중들은 알제리의 알제리를 외쳤다. 

프랑스는 알제리를 고립시키고 군사적으로 제압하기 시작하였다. 프랑스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였다. 폭력, 처형, 강간, 방화.... 알제리 역시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프랑스를 자극하고 도발하였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질 수록 프랑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저울추가 기울기 시작하였다. 알제리의 투쟁 역량이 바닥을 드러낼 즈음 프랑스에서 드골이 집권하였다. 드골은 집권하면서 프랑스의 알제리를 다시 한번 외쳤다. 하지만 그가 외친 프랑스의 알제리는 프랑스의 양심과 도덕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명예로운 철수를 의미하였다. 프랑스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지만 더 중요한 '영광스런 프랑스'를 택하였다. 하지만 영광스런 프랑스의 이면이 어떤 것인지 전세계인들이 알 수 있었다. 

프랑스가 영광스런 프랑스를 위해 알제리를 포기할 때 알제리는 국내에서 저항한 집단과 해외에서 활동한 집단간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결과는 국내 무장집단의 승리였다. 이 결과 국내 무장집단이 권력투쟁에서 승리하였다. 알제리의 승리 역시 떳떳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프랑스라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서구 식민주의자와의 싸움에서 승리했지만 알제리 인민은 새로운 독재에 직면해야 했다. 

알제리 전쟁은 양쪽 모두에게 '쟈칼의 날이 끝난 것'이 아니라 시작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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